친지 중에 이번에 외동딸을 처음으로 대학에 보내는 부부가 있다. 지난 한해 이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혹시라도 멀리 동부의 대학으로 가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LA의 대학으로 결정이 되어 일단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딸이 다음주 대학 기숙사로 들어갈 날이 다가오면서 집안에서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기숙사로 가져갈 살림살이를 챙기면서 세탁용 세제를 ‘가지고 가겠다’‘가져 갈 필요 없다’로 딸과 아버지가 대립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주장은 “매주 주말이면 아빠가 데리러 갈 테니 빨래는 집에서 하면 된다”이고, 딸의 주장은 “학교 시작하면 바빠서 매주 집에 못 온다”이다. 아버지는 “얘가 학교 생활 제대로 할까? 가끔씩 캠퍼스로 가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할 정도로 ‘중증’이어서 “아이 대학가고 나면 딸보다 남편이 더 걱정이다”고 그 부인은 말했다.
아이는 빛나는 자유에의 예감에 들뜨고, 부모는 품안의 자식 내어보내는 허전함에 가슴이 휑해지는 ‘한 지붕 두 감정’은 대학 신입생 자녀가 집 떠날 때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다. 아이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데,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부터 떠나 보내지를 못해 상실감에 젖는 것이 이제까지 부모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보다 적극적인 새로운 유형의 부모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대학 간 후에도 절대로 마음으로부터 보내지 않고 사사건건 발벗고 나서서 아이 일을 챙기는 부모들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매니저형 엄마’라고 부른다. 하늘을 맴돌다 자녀에게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쏜살같이 내려와 처리하는 ‘헬리콥터 부모’나 연예인 매니저처럼 자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챙기는 ‘매니저형 엄마’나 모두 자녀 일에 너무 극성스런 새로운 부모 세대를 말한다.
이런 부모들 때문에 요즘 대학 당국은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학생 보다 학부모가 더 많은 것은 예사. 학생 한 명당 부모가 모두 참석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부모’들의 전화, 방문, 이 메일 문의가 너무 몰려서 학부모 담당 부서를 따로 개설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가 하면, 그런 부모들 기분 상하지 않게 따돌리는 법을 학생들에게 훈련시켜 배치하는 대학들도 미국에서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학기초가 되면 부모들이 자녀가 수강할 과목들을 골라 대신 수강 신청을 해주는 광경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고 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우리 아이 학점이 왜 이렇게 나왔느냐”“이 성적이면 장학금을 탈수 있느냐”며 따지고 챙기는 엄마들이 있다.
자폐 청년 배형진군을 모델로 한 영화 ‘말아톤’을 보면 그 어머니가 “내 소원은 아들이 나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배군의 어머니 박미경씨가 실제로 한 말일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제 앞가림 못하는 아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막막했을 그는 가능한 한 아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호되게 훈련을 시켰고, 그래서 “혹시, 계모가 아니냐”는 수군거림까지 들었다고 한다.
‘홀로서기’가르치기는 모든 부모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학 캠퍼스에 극성 부모가 늘어나는 만큼 눈에 띄는 것은 나이 값 못하는 학생들이다. 남과 타협하고, 남과 같은 공간을 나눠 쓰며,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돈이 얼마 남았는지 금전관리를 하는 등 그 나이면 으레 갖춰야 할 기본적 능력을 못 갖춘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헬리콥터’이고 ‘매니저’인 부모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이다.
자녀를 품에 품는 것만큼 때되어 손놓아 내보내는 것도 부모의 사랑이다.
“보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보내는 이의/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바꿔 써본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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