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관한 책 중 주목을 받은 것의 하나가 ‘우파의 나라’(The Right Nation)라는 책이다. 이 책의 요지는 현재 미국의 주요 정치, 경제, 사회, 도덕적 이슈의 대부분에서 우파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그것은 오랜 기간 우파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 책을 한국 정치 질서 재편의 참고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의 우파들은 연방 상하원과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으며 싱크 탱크와 로비 단체 등에서도 리버럴 진영을 압도한다. 이념적 베스트셀러도 단연 우파 성향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이념 전쟁은 우파의 승리로 끝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주요 권력 기관 중 우파의 손길이 완전히 뻗치지 않고 있는 곳은 사법부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연방 대법원은 오래 전부터 우파들이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해 절치부심 하던 곳이다. 미국의 모든 주요 이슈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거듭된 배신을 맛 본 곳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재직 중인 9명의 판사 중 7명이 공화당 행정부가 지명한 인물들이다. 그 이전 리버럴 판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얼 워런 대법원장은 아이젠하워가 지명했으며 그의 뒤를 이은 윌리엄 브레넌도 마찬가지다. 리버럴 진영의 최대 이슈인 낙태권 인정 판결을 내린 해리 블랙먼은 닉슨이 지명했고 현직 판사 중 가장 리버럴한 존 폴 스티븐스는 포드 덕에 그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부시 지명을 받아 상원 청문회에서 선례를 존중하겠다던 데이빗 수터는 지금 민주당 행정부 지명 판사보다 더 리버럴한 판결을 내려 두고두고 보수파의 분노를 사왔다. 최근까지 사법부 인선을 둘러싼 공화당 우파의 구호는 “더 이상의 수터는 안 된다”(No More Souter)였다.
극우파로 분류되는 로버트 보크가 상원 인준에 실패, 레이건에 의해 그 후임으로 지명된 앤소니 케네디는 “보크와 80% 의견을 같이 한다”고 공언했으나 그가 내린 판결을 보면 수터와 별 차이가 없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꼭 들어맞는 곳이 바로 연방 대법원이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 후임으로 존 로버츠 연방 고법 판사를 지명했다. 하버드 출신으로 확고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지명에 보수파들은 환호하고 있다. 낙태권 옹호 단체들은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그의 인준을 결정할 연방 상원 내 민주당 의원들은 일단 두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관측통들은 과거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의 80%가 인준을 받았다며 이번에도 이변이 없는 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과연 보수파들이 원하는 판결을 내려줄 지는 미지수다. 판사는 로봇이 아니라 독자적인 판단력을 가진 독립체다. 과거 예를 보면 일단 종신직인 대법원 판사 자리에 앉게 되면 자기를 뽑아준 사람 뜻과는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 그것이 행정부와 사법부를 분리한 뜻이기도 하다. 과연 로버츠가 보수파들의 구미에 맞는 결정을 내릴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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