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온 포스터 아동은 아홉 살 남자아이다. 아이가 들고 온 조그만 가방에는 낡은 티셔츠와 작아진 반바지 하나, 그리고 고장난 장난감 나부랭이가 들어 있었다. 얼마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우리 식구 중에 그래도 가장 먼저 마음을 붙인 사람은 동갑짜리 나의 막내아들이다. 아이는 나의 막내와 한 방에서 이층 침대를 나누어 쓴다. 이층에 누운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눈물을 흘리다 보면 아래 누운 나의 아들아이 역시 잠들지 못하고 누워서 이런저런 궁리가 많아진 모양이다.
우리는 두 아이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윗층 침대를 아래로 내려 두 개를 나란히 배열해 주었다. 엊그제는 침대 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다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언뜻 눈을 떠보니 아이 둘이 얘기를 하고 있다.
너는 학교 가는 거 재미있니? 아이가 먼저 막내에게 묻는다. 그저 그래. 어떤 날은 재밌고 어떤 날은 재미없어. 넌? / 나는 학교 가기 싫어. 우리 아빠가 감옥간 거 아이들이 다 아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날 놀리니까 학교 가는 게 싫어 / 아빠가 왜 감옥 계시니? / 어떤 사람에게 총을 쏘았대. 몰라, 신문에도 나고 맨날 뉴스에도 나오구 그랬어. 그런데 우리 아빤 나쁜 사람 아니다. 난 알어. 그 사람이 먼저 우리 아빠를 때리니까 아빠가 화나가지구 총을 쏘았다고 아파트 사람들이 말했어 / 아이들이 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저 계속 눈을 감고 있다.
아빠 보고 싶니? / 응 / 그러면 넌 왜 엄마랑 살지 않니? / 내가 너한테만 얘기해 줄게, 비밀 지킨다고 약속해 / 약속한다. 남자 대 남자로! 두 아이는 서로 주먹을 맞부딪친 다음 두 팔을 엇갈려 맹세까지 했다. 내 엄마 아빠는 이혼했대. 아빠가 돈을 못 버니까 엄마가 도망갔어 / 어디로? / 나두 몰라 / 너, 엄마 찾아 삼만리 책 안 읽어봤니? 거기 나오는 애처럼 너두 엄마 보구 싶으면 엄마 찾으러 갈 수 있잖아 / (침묵)
아이가 잠들었나 하고 내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너네 엄마 어디로 가셨는지 찾아보구 싶으면 내가 너랑 함께 가줄까? / 아니야… 우리 엄마는 그 엄마랑 다르잖어 / 뭐가 달러? / 이야기책 속에 그 엄마는 돈 벌러 간거지만 우리 엄만 내가 미워서 간거잖아 / 나는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비밀을 나눈다고 하는 장면에 갑자기 끼어들 수는 없었다.
아이가 살그머니 일어나 머리맡의 창문 블라인드를 열면서 말했다. 난 이제 엄마를 다신 못 볼거야. 내가 눈물 흘리는 건 엄마가 나한테 잘 해주셨던 거 생각나서 그런 거야. 이혼하는 건 참 나쁘다 / 그래, 엄마 아빠가 싱글일 적엔 서로 좋아하다가 결혼한 다음에 안 좋아하게 되면 이혼하는 것이겠지? 다른 초이스(선택)는 없나? / 있어, 맨날 맨날 싸우는 거야 / 그렇구나. 우린 학교에서 한 애가 쏘리(Sorry)하면 또 딴 애는 잇츠 오케이(It’s O.K.) 하고 다시 노는데 왜 어른들은 그거 안할까? / 조금 후, 막내가 하품을 하자 아이도 따라 하품을 했다. 두 아이는 곧 숨소리 고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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