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빨간, 푸른, 하늘색 깃발이 펄럭인다. 북경의 50일에서, 알라모에서, 파리의 개선문을 지나면서, 이오지마에서 인천상륙전에서 휘날렸던 그 깃발이다. 사이공에서, 진주만에서, 조치원에서 흘렸던 선혈이 그 깃발에 묻어 있다. 지금 진행중인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다시금 그 선형이 흘러 얼룩져간다.
롱 아일랜드 그린 베이의 한적한 학교 캠퍼스에서 미국 대학생들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깃발을 날리며 월남전을 반대하는 데모를 했다. 서울을 떠난 이후 미국에서 처음 본 일이었다. 신기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해에 미군에 입대했다.
휘트우드는 훈련소답지 않게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 언덕들이 바다를 기리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해가 뜨고 질 때 어김없이 깃발은 오르고 내렸다. 영천에서, 태릉 연병장에서 매일같이 바라보던 태극기가 나의 마음을 혼잡하게 했다. 부질없이 눈물이 난다.
그런 거야. 훈련조교들은 잔인할 만큼 나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미국에서 살면 미국인이야 라고 목청을 높여 복창을 시켰다. 그래도 깃발은 내 맘속에 쉽게 새겨지지 않았다. 성조기에 싼 많은 관들이 트레비스 공군기지를 통해 울부짖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약식 성조기를 그려 넣은 구호물자들이 잘못 전달되거나 잘못 쓰여져서 미국은 수시로 세계 곳곳에서 비난을 받았다. 넉넉한 군 생활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군이 되는 것은 미국인이 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인 것이다.
미국인이 되기 위한 책임과 권리는 서서히 무거운 짐을 지우기 시작했다. 제1차 걸프전이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군병원으로 소집 명령이 왔다. 24시간 내로 조지아의 아이젠하워 병원에 신고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01 공수부대가 있는 훠트 켐블로 발령이 났다. 매일 중장비를 실은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병영을 빠져나갔다. 나는 허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국기 게양식에 그냥 쓰라림이 북받쳐왔다. 성조기가 눈에 안쓰럽게 들어왔다.
부룩스 병원은 어린이와 젊은 부모들로 혼을 빼앗듯이 바빴다. 이라크로 간다, 안 간다 하는 동안에 전쟁은 끝나버렸다. 8개월만에 더플백을 메고 집에 돌아왔다.
혼잡하던 마음속에 차츰 차츰 성조기는 태극기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세계 곳곳에서 성조기가 찢기고 불에 태워졌다. 어느 듯 내 마음을 태우는 것을 느껴갔다. 9.11 사태 이후 성조기는 내가 잘 돌보아야겠다는 따스한 마음이 스며온다. 최근 근처 병원에 이라크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한국계 미군이 후송되어 왔다. 평생 불구가 될 지 모르는 젊은이다. 미국을 위해 몸을 바친 고귀한 청년. 나는 은연중에 그에게 빚을 진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의 라이언 일병처럼 홀로 구출되기를 거절하고 국가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병사를 흠모한다.
올해 미 사관학교 졸업생이 50명이 넘는다 하니 우리는 미국을 지키는 위대한 군인을 기대해볼 만 하다. 붉은 색 줄무늬처럼 곧고, 하늘처럼 높은 인성과, 별처럼 빛날 성조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갈 용사를 바라고 고대하는 것이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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