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급설(駟不及舌) -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혀를 따르지 못한다고 했다. 공자 시대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라면 요즘으로 치면 고속철이나 제트기쯤 될까. 그 빠른 교통수단도 입으로 내뱉는 말을 따라 잡을 수는 없으니 혀 조심, 말 조심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크던 작던 비밀을 알고 나면 입이 근질거려 못 참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속성이다. 아침에 한마디 한 것이 점심 시간 되기 전에 잔뜩 부풀려서 처음 발설자에게로 되돌아오는 일은 다반사이다. 하물며 미국의 대표적 수수께끼, 만인이 궁금해하는 미스테리를 알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기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 ‘딥 스로트(Deep Throat)’가 33년의 베일을 걷어내고 정체를 드러내자 그 비밀을 지켜낸 주인공들의 ‘혀 단속’이 한편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진짜 주인공인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근 30년간 가족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것도 대단하지만, 당시 취재기자였던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틴, 그리고 벤자민 브래들리 당시 편집국장이 끝까지 입을 다물었던 사실이 새삼 평가를 받고 있다.
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후부터 30여 년간 ‘딥 스로트’에 대해서는 온갖 추측이 무성했다. 닉슨 행정부 중심에 있던 사람이면 한번씩은 다 거론되었다. 알렉산더 헤이그 비서실장,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백악관 공보 담당이었던 다이앤 소여, 연설문 작성자였던 팻 뷰캐넌, 게다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까지…
그럴 듯한 해설을 덧붙인 추측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우드워드, 번스틴, 브래들리의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가만히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였던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디프 스로트가 누구인지 정말로 알고 싶어서 우드워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자서전에 썼다. 하지만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브래들리 편집국장의 부인 역시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이 절대로 알려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에, 괜히 물었다가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서 실제로 묻지는 않았다고 했다.
“워싱턴은 비밀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도시인데 이 비밀은 30년 이상 지켜져 왔다”며 한 베테란 언론인은 우드워드 등이 취재원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비밀이 마침내 밝혀지자 미국인들의 반응은 ‘시원 섭섭’이다. 워터게이트의 마지막 비밀이 드러난 것은 속 시원한데, 이제 더 이상 딥 스로트의 정체를 놓고 상상의 나레를 펼 수가 없어 섭섭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딥 스로트가 헤이그나 키신저 같이 더 유명한 인물이었더라면 얼마나 더 재미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한다.
전설은 깨어지고 마침내 워터게이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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