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5일 오전. 인터넷을 서핑하던 도중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남가주내 대부분 언론사에 각종 뉴스와 취재거리를 24시간 알려주는 통신사인 ‘CNS’뉴스속보 웹사이트에 ‘어제 사우스 LA에서 발생한 한인 리커업주 김상연씨 강도피살 사건에 대한 최신정보는 아직 없다. 기자들은 성급하게 사건담당 형사에게 전화하지 말고 대변인의 공식발표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려라’는 긴급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던 것.
사건수사 때문에 식사도 제때 챙겨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쁜 형사들이 범인체포 여부를 묻는 한인언론사 기자들의 소나기 전화에 시달릴 것을 우려해 LA경찰국(LAPD)이 내린 일종의 ‘예방조치’였다.
모든 한인 언론사들이 CNS로부터 뉴스를 공급받기 때문에 LAPD의 메시지는 한인기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문제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한인기자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면 통신사를 통해 이런 메시지까지 내보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언론 기자로 취재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혀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한인관련 사건이 없냐고 물어보면 ‘5분 전에 전화했으면서 왜 또 전화하나’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선 전화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럴 경우 ‘사실은 금방 전화한 기자는 내가 아니라…’라는 식으로 해명할 수 밖에 없다. 또 어떤 경우는 ‘코리안’이라는 말을 꺼내면 상대방이 ‘코리안만 사람이냐. 왜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죽는 사건은 취급 안하나’라고 대뜸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한인언론의 취재경쟁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기관은 검시국. 하루라도 전화를 안걸면 큰 사건을 놓칠 수 있어 밀착관리 대상인데 같은 직원이 매일 10통에 가까운 한인기자들의 전화와 씨름한다.
워낙 오랫동안 한인언론에 시달려온 관계로 검시국내 특정 부서의 경우 다짜고짜 ‘한인사망자 없느냐’라고 묻는 질문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기로 방침까지 정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해프닝들은 인쇄, 방송매체를 모두 합쳐 7~8개 한인 언론사가 매일 주류사회를 상대로 취재경쟁을 벌이면서 파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기자로서 심히 우려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커뮤니티 이익을 대변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한인언론의 취재관행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자칫 한인사회 전체가 민족 이기주의에 물든 집단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마이너리티 중에서 한인들 처럼 자기 민족만 챙기는 그룹은 없다’는 선입견이 타 커뮤니티에 존재,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우려섞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인관련 사건·사고를 집요하게 추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한인언론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구성훈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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