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택 목사(스탬포드한인교회)
삶이란 조절의 연속이 아닐까? 조절을 잘 하면 사는 것이지만, 잘 못된 조절은 곧 죽는 것이요,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절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삶을 위한 조절을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일까? 혹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누구에게도 터놓기 어렵지만.
최근 우리 이민의 삶은 물론 한국, 지구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 마음 뿌듯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사연들. 뜨거운 감동이 솟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는 경악할 사건들. 매스컴을 대할 때마다 오늘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진통.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동전의 앞과 뒤, 치마와 저고리는 불가분리의 관계. 적절한 조절이 이루어질 때는 창조적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모습과 위치가 다름으로 갈등과 분열이 시작될 때, 삶 전반에 걸쳐 파생되는 결과가 무엇인가? 즉 다양한 삶의 모습이다. 마치 죽음의 모습이 그토록 다양해지는 것 같아 두렵다.
사닥다리가 아무리 높아도 하늘까지 닿을 수야 없듯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어야 한다. 받을 때가 있으면 나눌 때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위엣 것만 바라보고, 아래 것을 무시하고, 겉의 것만을 치장하고 속에 것은 소홀히 하고 있으니, 사회적 소외와 영혼의 공허, 돌봄이 없는 심리적 갈등과 위로 받지 못한 상한 마음의 결과가 아닌가?
일찍이 솔로몬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 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2-9)고 했다.
즉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와 시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을 구분함이 곧 조절이 아닐까? 조절이란 균형, 관계, 안전, 조화, 화해를 위함이다. 우리 삶 가운데 조절이 필요한 것을 예를 들면 흥분과 분노 조절(개인), 속도와 방향조절(차량), 체중과 혈압조절(건강), 한민족을 위한 남북조절(민족) 등등이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모든 악기의 음률을 조절(tuning)한다. 그 기준은 ‘오보에’가 A음을 소리 내면 악장의 지시에 따라 현악기부터 관악기들이 음을 맞춘다. 그리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게 된다. 마치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소리를 외친 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갈릴리에서 지휘봉을 잡으신 예수처럼. 즉 우리의 삶은 솔로·독주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교향곡과 마찬가지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태초에 자연을 다스릴 권한, 즉 조절의 능력을 주셨다. 물론 조절의 능력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 우리의 잣대와 저울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뜻에 기준을 맞추어야 하지 않는가?
나 자신을 위한 말씨조절. 나와 너를 위한 거리조절. 공동사회를 위한 높이조절. 나라를 위한 권력조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자원과 영원한 생명을 통한 하늘과 땅의 조절.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한 조절·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날마다 어디서나 참된 조절을 통해 아름다운 조화와 모든 사람들과 화해를 통해 창조적 삶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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