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경 훈 <미주본사 논설위원>
지난 20년 간 미국 경제는 벼라 별 일을 다 겪었다. 불황과 호황, 하이텍 붐과 주가 폭락, 금리 인상과 초 저금리, 유가 폭등과 부동산 붐 등등. 그러나 이 많은 사건과 긴 세월 동안 줄기차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부채의 증가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할 것 없이 지난 20년 간 미국은 사상 유례 없는 빚잔치를 벌려 왔다. 그 결과 올해 현재 연방 국채 4조 달러, 정부 보증 부채 6.1조 달러, 주 및 지방 정부채 1.9조 달러, 회사채 6.5조 달러, 모기지 9.4조 달러, 기타 부채 6조 달러 등 미국인들이 지고 있는 빚의 총액은 34조 달러에 달한다. 사상 최대 규모인 이 액수는 미국 연 GDP의 3배, 미 상장주가 총액의 2배가 넘 는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부채 총액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문제는 빚의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추월할 때 벌어진다. 지난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늘던 부채는 지난 수년 간 가속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4년 간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46년래 최저 수준으로 금리를 낮춘 것이 그 직접적 원인임은 물론이다.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미 경기가 침체 국면을 맞자 FRB는 소비를 촉진시키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례 없는 이 과감한 금리 인하 정책을 폈다. 어쨌든 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미국 경제는 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부동산 시장은 근래 보기 드문 활황을 누렸다.
그러나 극약 처방은 항상 부작용을 낳는다. 인플레를 밑도는 싼 이자 덕분에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잔뜩 빚을 얻어 쓰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앞다퉈 물건을 샀다. 그러나 싸게 얻은 과도한 부채는 금리가 오르면 기업 운용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웬만한 물건은 이미 다 산 소비자들도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 구매를 꺼리게 돼 앞으로의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토록 오랫동안 낮은 금리를 고집해야 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미국 경제가 중증에 걸려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금리가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뉴욕타임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모기지를 다 갚은 사람은 1989년 6명 중 5명에서 2001년 4명 중 3명으로 줄어들었다. 낮은 금리를 이용해 주택 에퀴티를 끄집어 쓰는 바람에 노인들 중 상당수가 30년 상환 모기지의 그물에 다시 매이고 있다. 같은 기간 고령자들이 지고 있는 모기지 총액은 4배가 늘어났다.
과중한 모기지 부담에 시달리는 사람은 고령자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모기지인 미국인들의 개인 부채는 지난 수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집 값이 2배 이상 뛴 것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집 값이 계속 올라준다면 무리하게 빚을 안고 사더라도 에퀴티가 늘어나겠지만 반대로 주택가가 하향 곡선을 긋는다면 시가보다 빚이 많은 ‘깡통 주택’이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FRB는 지난 주 4년 만에 처음 연방 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했다. 오래 전에 예고되고 비교적 소폭이지만 그 파장은 무시할 수 없다. 한번 올리면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계속 올릴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까지 2.5%, 내년 말까지 3.5%~4%선까지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상과 때맞춰 지난 수년 간 달아올랐던 남가주 주택 시장은 매물이 쏟아지고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는 등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고 미 주식시장도 연일 하락하며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영원히 계속되는 좋은 시절은 없다. 고금리는 인플레를 잡고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만 증시와 부동산, 채무자에게는 악재이다. 싼 금리에 혹해 과도한 부채를 껴안은 개인이나 기업은 다가올 지금이야말로 고금리 시대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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