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식/MD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운명을 지니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예기치 않던 모멘텀으로 인해 운명의 변화를 숙명적으로 맞게 되기도 한다.
위암수술 날짜를 받아두고 임시 퇴원해 있는 아우와 모처럼 함께 외식을 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했다. 며칠 뒤 위를 몽땅 들어내는 대수술을 하고 나면 앞으로는 먹고싶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어쩌다가 위암이란 말인가.
보름 전 아우는 위에 이상한 자각증상을 느끼고 전문의를 찾아가 위에 암 증상이 있다고 진단한 의사의 권유에 따라 병원에 입원했다. 암이라면 난치병이고 수술을 해도 대개 재발하여 오래 살지 못한다는 상식적인 선입관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동생은 건강관리에 유념해 왔고 특히 음식에 관한한 얄미울 만큼 가려먹어 왔기 때문에 위암이란 천만 뜻밖이었던 것이다.
아우는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전화통보에 충격을 받고는 처음 한동안 심란하여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 3년만 더 기다려 정년 은퇴하여 인생의 휴식기를 갖고싶어하던 그가 삶을 접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한순간 사형선고 같은 고통을 감당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문병 갔을 때 아우는 평상심을 되찾고 있었고 수술도 그 부위만 제거할 것 같다는 자기진단에 낙관하고 있었다. 허나 종합검사가 끝나고 수술날짜를 예약하고 퇴원한 그날 저녁 위를 몽땅 들어낸다는 전화에는 그저 참담하기만 했다. 어떤 수사적인 위로의 말도 무의미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기분을 느꼈던지 아우는 “형님, 수술 전에 맛있는 음식이나 사주소”하고 분위기를 낸다.
제수씨의 말인즉 아우는 수술을 앞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로 채운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어 그런 그를 몰래 보고있노라면 어떻게 위로할 수 없는 진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진하듯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그가 숨을 고를 때가 되어 맛보는 좌절감은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이제 아우와 그의 가족들은 삶의 새로운 시련과 도전을 맞게되었다. 긴 병에 효자가 없고 특히 부부간에는 고도의 애정과 배려와 헌신이 요구된다. 자칫하면 서로가 이방인이 될수 있는 상황에서 정작 아우의 신앙이 인격으로 구체화되어 그가 오히려 가족들간의 불편과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며 고독과 투쟁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지. 집에 돌아와 다과를 나누면서 의식적으로 암이야기는 피했다. TV에서 대통령탄핵재판을 시청하다가 헤어질 때 나는 남은 며칠간이라도 먹고싶은 음식을 사먹으라고 봉투를 건네주었다. 신을 신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측은해 서글픔이 가슴바닥을 적신다.
시도 때도 없이 그의 건강을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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