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 미주본사 논설위원>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로 ‘실험’(Das Experiment)을 들 수 있다. 신문 기자가 직업인 주인공은 ‘인간 심리를 관찰하기 위해 죄수와 간수 역할을 할 자원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기사 거리가 될 것으로 판단, 응모한다.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이들 20명은 10명씩 죄수와 간수복을 나눠 입고 교도소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서로 웃고 즐기며 지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간수들은 권위주의적이고 포악해지며 죄수들은 비굴해지거나 반항적이 된다. 마침내 죄수와 간수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간수들은 죄수를 고문한다. 나중에는 이성을 잃은 간수들이 실험 담당 여의사까지 감방에 가두고 성폭행을 기도하다 죄수들의 반란으로 축출되나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라크 감방 내 죄수들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충격과 분노를 가누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인들을 고문한 미군 병사들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미국 내 가족들은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실험’에 나온 사람들은 서로 원한은커녕 일면식도 없던 사이다. 그럼에도 곤봉과 수갑을 쥐어줬다는 것만으로 짧은 기간내 야수로 변한다. 매일 같이 동료가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있는 미군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벽의 두께는 생각보다 얇다. 모든 도덕과 법과 종교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야수성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감시가 조금만 느슨해지면 언제 어떤 형태로 뛰어나올지 모른다. 부시 행정부는 일찍이 안보를 이유로 테러 관련 용의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변호사의 접견은 물론 어디 수감돼 있는지조차 비밀에 부쳐왔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기적에 가깝다.
미국은 건국이래 지난 200년 간 수많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흑인을 노예로 삼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미국이 위대한 것은 이런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이번 포로 학대 사실도 미군 감찰과 미국 언론을 통해 먼저 밝혀졌다.
미군의 포로 학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랍과 한국의 언론들은 인권에 관한 ‘이중 잣대’를 거론하며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미국보다 100배나 가혹한 인권 침해를 밥먹듯이 저질러온 사담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꿋꿋한 침묵을 지키던 사람일수록 목청이 크다는 점은 흥미롭다.
미국의 인권 침해는 마땅히 규탄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사담과 김정일을 비판한 사람에 한한다. 인권은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규탄 대상을 고를 수 있는 뷔페 식당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