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영 <포리스트하이츠, MD>
맥클린 교회에서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모노드라마 성극이 공연됐다. 모노드라마 배우 이영식 씨는 세계 25개국을 순회하며 문화선교를 하는 선교사로서 극을 통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신앙 생활에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외모하고는 다른 힘이 무대를 꽉 채우고 관객을 압도했다.
빌라도가 예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빌라도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압도되어 자기가 총독이면서도 오히려 기가 죽어 쩔쩔매었노라고 고백했고, 수많은 민중이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이었지만 빌라도가 보기에는 예수가 잘못한 게 없어 될 수 있으면 죽이지 않으려 했노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민중들의 광기가 예수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 민중들을 뒤에서 선동하고 민중심리를 조작한 세력들이 죽였지 빌라도 본인이 죽이지 않았노라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미쳤다는 말도 있고 자살했다는 설도 있지만 극에서는 빌라도가 모든 고백을 끝마치고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극중에 빌라도가 객석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예수는 당신이 죽였다고 할 때 오늘도 민중은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민중이 깨어 있을 때만이 올바른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불란서에 혁명이 일어났을 때 루이 16세는 랑팡 감옥에 갇혀서 종이와 잉크를 원망했다고 한다. 종이 기술이 발달하고 좋은 잉크가 나옴으로써 사상가들이 민중을 일깨우는 사상을 퍼뜨려 혁명이 일어났다는 생각에서였다.
왕과 왕비는 단두대에 세워졌고 로베스삐에르의 공포정치를 거쳐 5인 집정정치로 권력을 분산하며 분열이 일어난 틈에 나폴레옹이 등장하지만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유럽을 휩쓰는 역사적 전기를 열었던 것이다. 혁명의 주체가 민중이 되어 혁명의 대상이었던 왕과 귀족들, 부패한 성직자들을 몰아내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새롭게 탄생했던 것이다.
그 민중을 일깨워 순 기능을 하게 했던 것은 광기가 아닌 자유와 평등 사상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사건은 순 기능이 아닌 대중 조작에 의해 민중이 그 조작에 이용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 민중을 조작한 세력들은 아마도 그 시대의 기득권층 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인이 아닌 유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민중은 어디쯤에 서있으며 역사적 시간은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동학 혁명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해방 후 나타나는 독재자들은 민중들이 깨어나는 것이 불안해 계속 우민정치를 펼쳤고 거기에 세뇌된 일부 민중은 아직도 역기능적 광기에 젖어 있어 스스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결과가 정치꾼들이 조작해내는 지역주의에 포로가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직도 민중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과거의 시간에 잠자고 있기를 바라는 자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던 유태인들로서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 자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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