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주필>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에게 큰 문제가 닥치면 델포이 신전에 가서 답을 구하는 관습이 있었다. 신전을 지키는 무녀가 제사를 올린 다음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 내용을 전하는데 이것을 ‘신탁’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레이폰이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현명한가”에 대해 신탁을 의뢰했다. 그랬더니 나온 대답이 “소포클레스가 현명하지만 유리피데스는 더 현명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소크라테스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아테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저마다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는 소크라테스를 아테네 시민들 손으로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500명의 주민대표 평의원들이 참석한 가장 민주적인 법정에서,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말이다. 사형찬성과 사형반대는 30표 차이였다. 30표가 모자라 아테네 최고의 현인이 죽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그에게 탈출을 권한 것도 이 재판이 결코 정의를 집행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의에 불복종하는 것은 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통곡했다.
특히 플라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매한 군중에게 다수결의 힘이 주어졌을 때 벌어지는 과오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을 기본제도로 삼고 있는 한 방법이 없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경우 그의 사형을 반대한 평의원도 많았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여 벌금 정도의 형을 내렸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겨우 30표를 더 얻은 다수가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를 죽일 권리까지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오히려 배반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 제도에 실망하여 아테네를 떠나 12년간이나 해외를 방랑했다. 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얻은 것은 “철학자가 정치를 하거나 정치인이 철학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플라톤의 ‘철인정치’ 이론이며 그의 명저 ‘공화국’의 기본내용이다.
철인정치를 위해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그가 아테네에서 문을 연 학원이 인류 최초의 대학으로 불리는 ‘아카데미’다. 그러니까 ‘아카데미’는 유능한 정치인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었고 마침내 플라톤의 후계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하게 된다.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의 모순은 플라톤이래 2400년이 지나도록 예나 지금이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도 모두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들의 리더십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 사람들말고 다른 사람 누구 없나”하고 사방을 둘러보지만 선거의 다수결 원칙 때문에 유능한 리더를 구할 도리가 없다.
특히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은 근소한 표 차이로 당선되었건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너무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 가면 양쪽 데모대가 거리에서 한바탕 붙기 직전까지 와있다. 이라크 전쟁이나 한국의 정국 불안정이나 모두 다수결 원칙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숫자로 밀어붙일수록 국론은 더 분열될 것이다. 이 시대는 지금 민주주의 다수결원칙의 함정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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