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민/전 언론인>
요즘 신문을 보면 웰빙(Well - Being)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는 웰빙 신드롬은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먹고 사는 데 급급해 앞만 보며 달려왔 던 사람들이 이제는 한숨 돌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치중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기사에 따르면 가장 먼저 웰빙 바람이 불어닥친 분야는 식품 분야. 한 푼이라도 싸게 살 수 있다면 체면 따위는 던져버렸던 아줌마들이 이제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을 생각해 유기농산품 전문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운동기구를 비롯한 헬스용품도 불티나게 팔려 요가복을 판매하는 한 닷컴 회사는 최근 몇 달 사이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발빠른 기업들이 저마다 웰빙 마케팅에 나서고 있어 웰빙의 파워는 여기서 끝날 조짐이 아니다. 섭씨 1도 단위로 온도를 조절하는 와인냉장고가 출시됐는가 하면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을 생산하는 가전업계는 웰빙 신드롬에 힘입어 불호황 산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레저, 주택, 의료 등 모든 산업에까지 웰빙 마케팅은 끝없이 번져나갈 것이다.
한 마디로 삶에 여유가 생긴 것이니 반가운 일이지, 시비 걸 일은 아닌 듯하다. 단지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웰빙이라는 단어이다. 번역으로 먹고 사는 때문일까. 나는 아무래도 한국 중산층의 업그레이드된 소비 패턴에 웰빙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To Have or To Be (우리 말로는 소유냐 존재냐로 번역되었던 같다)에서 존재와 소유를 대립 개념에 놓았다. 프롬에 의하면 산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유에 가치를 두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존재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사람이 존재의 의미와 기쁨을 누리는 상태를 웰빙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웰빙에는 소유 이상의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수락(Acceptance)과 상생이라고 생각한다. 수락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 납득할 수 없고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절대자를 받아들이는 일이라 해도 좋겠다)이야말로 웰빙의 출발점이 아닐까.
무능한 남편, 말썽 피우는 자식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은 내 남편(아이)은 이럴 수가 없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맡기려는 자세야 말로 웰빙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정한 웰빙은 나 자신의 안위뿐 아니라 이웃의 안위까지 챙기는, 이른바 상생을 추구할 때 이루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이웃과의 관계가 불편할 때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을 쓰기 전 혹시나 하여 인터넷에서 웰빙에 관한 기사를 검 색하여 보았더니 마음의 업그레이드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 었다.
강남의 주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는 기사라도 한 줄 찾아볼까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렸던 나는 아마도 검색 카테고리를 잘못 입력시켰던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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