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효 <실버스프링, MD>
요사이 갑자기 주위에 불치의 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고, 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이들을 방문하며, 가족을 위로하는 가운데 죽음의 문제를 더욱 가깝게 생각하게 된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왕을 우스운 이야기로 웃기는 직업 광대(Jester)가 있었는데, 만일 왕을 웃기지 못할 경우에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드디어 하루는 왕이 웃지 않아 죽게 되었는데, 왕은 광대의 그 동안 수고를 고려하여 사흘의 기간을 주며 죽을 방법을 선택하라고 명하였다. 이상하게도 조금도 근심의 기색을 보이지 않던 광대는 사흘 후에 왕에게 “늙어 죽는 방법을 택했다”라고 말해 왕은 그의 뛰어난 재치에 웃으며 용서해 주어 당장의 죽음을 면했다는 이야기다.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겠으나, 이야기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이 광대처럼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사실은 조금씩 죽어 가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인간에게 한가지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인생을 “아침에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렇게 짧은 삶을 살지만, 그러나 사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믿음의 삶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자세의 삶은 현세의 우리의 삶의 모습에 현저한 차이를 준다 하겠다. 영원한 나라를 믿기에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다가올 나라를 소망 가운데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의 삶을 산 사람들이 대표적 증인들이라 하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면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 해 의아해 하는 일본 간수에게 “나는 돌아갈 본향이 있지만 당신이 걱정”이라고 복음을 전해, 결국은 그 간수도 후에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실로 믿음의 힘이라 하겠다.
과연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짧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버지니아의 맥클린 바이블 처치의 담임목사 론 솔로몬은 예수를 믿기 전에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며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목적 없이 사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컴퓨터를 끄면 캄캄한 화면에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지만, 모든 기록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행적도 하늘나라의 책에 다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들은 예수님 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며 삶을 마감할 수는 없겠지만, 사도 바울 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이러한 승리의 믿음이 있었기에 예일과 하버드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그만두고 데이 브레이크 라는 장애인 공동체에서 ‘아담‘이라는 장애인을 섬기다 죽은 헨리 나우웬은 죽음을 ‘가장 큰 선물’이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