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미국인 의식 구조 가운데 가장 큰 차이의 하나는 자녀 군 입대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고위층일수록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 역사를 보면 상류층 가운데 격전지로 자식을 내보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케네디 가를 명문으로 일군 조셉 케네디는 자식이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을 만들기로 결심, 제2차 대전이 나자 하버드 법대에 재학 중이던 큰아들 조셉 케네디 주니어를 군대로 내보냈다. 해군 폭격기 조종사가 된 조셉 주니어는 유럽 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배치돼 미국에 돌아올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싸우다 1944년 8월 전사했다.
둘째 아들 존도 군대에 갔다. 태평양 함대 배속 소형 보트 함장으로 배속된 그는 1943년 8월 일본 함정에게 배가 두 동강나는 고초를 겪었음에도 물에 빠진 동료를 입에 물고 인근 섬으로 헤엄쳐 살아났다. 전쟁 영웅으로 제대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승승장구, 43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됐다.
태평양전쟁이 영웅으로 만들어준 인물로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를 빼놓을 수 없다. 부시는 해병들이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으로 유명한 이오지마 인근 치치지마 섬에 1944년 출격 나갔다 격추된 9명의 해군 조종사 중의 한 명이다. 이중 8명은 모두 현장에서 숨지거나 일본군에 잡혀 잔인하게 살해됐다. 여기서 유일하게 극적으로 구조된 부시는 미국 대통령이 됐다.
반면 월남전이 한창이던 60년대 말 현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텍사스 주 방위군으로 근무하며 한가하게 비행기를 몰고 있었다. 당시에는 편하게 지냈을지 모르지만 그 후 아들 부시는 제2차 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에 참가한 아버지와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열등 의식에 젖었다고 한다.
월남전의 전쟁 영웅 존 케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굳어지면서 부시의 군 경력이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해군에 들어가 쾌속정 함장으로 근무하며 은성 훈장과 동성 훈장, 전투중 부상자에게 주는 ‘퍼플 하트’ 훈장을 3개나 받은 케리와 부시의 경력이 비교되기 때문이다. 케리가 예상을 깨고 아이오와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월남전 당시 케리가 목숨을 구해준 퇴역 장병이 당적을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꾸면서 그를 찍겠다고 공언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군에 대한 문민 우위의 전통이 확립돼 있는 미국이지만 군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이 은근히 많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은 물론이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랜트, 해군 고위 관리였던 시오도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아이젠하워 등등.
그러나 제2차 대전에서 한 쪽 팔을 잃은 밥 도울이나 월남전에서 포로로 죽을 고생을 한 존 맥케인을 보면 전쟁 영웅이라고 다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과연 케리가 전쟁 영웅 명함만으로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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