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차를 몰고 갔다. 그 차는 도난신고가 됐다. 마침 경찰이 그 차를 적발했다. 운전자는 살인미수로 복역 중 가석방 된 상태에 있었다. 경찰 제지를 무시하고 운전자는 경찰 차를 들이받으며 저항했다. 경찰관들은 부상을 입었다. 결국 경찰관들은 총을 발사해 운전자는 숨졌다. 지난 11일 발생한 코로나 경찰관들의 한인 제임스 이씨 사살사건의 개요다.
이씨 사살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당방위였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도난 차에 동승했던 이씨의 여자 친구는 두 번째 경찰 차를 받은 후 이씨가 ‘항복한다’(I gave up)고 외쳤다고 밝힌 것이다. 총격은 이씨가 소리를 지른 후 수초 후에 가해져 결국은 경찰이 잘못했다는 주장이다.
경찰의 주장은 다르다. 경찰 차를 두 차례 받은 후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항복의사를 보였다는 여자 친구의 진술에도 무리가 있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어 운전자는 두 손을 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그러므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경찰의 과잉대응인가. 아직은 뭐라 말할 수 없다. 여자 친구와 경찰의 주장이 엇갈리는데다가 다른 목격자도 없기 때문이다. 정황으로 보면 경찰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만의 하나라는 말이 있다. 만의 하나, 여자 친구 진술대로 항복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총격을 가했다면 이는 명백한 경찰의 과잉대응이다. 이 부문을 보다 철저히 조사해 ‘만의 하나’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임스 이씨 경찰 총격 사건은 이와 별도로 한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씨와 여자친구는 교도소에서 만난 사이로 다시 재수감되는 일이 있으면 자살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따라오는 순간 이들은 ‘교도소에서의 악몽’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악몽이 결국은 경찰 차를 들이받는 등 무모한 행동을 촉발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한 순간의 충격과 혈기가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한인은 하나 둘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도소 생활은 악몽이다. 이들은 그런데 사소한 잘못으로 경찰의 제지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넘기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로 보면 이번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성격의 사건이다. 한 순간의 ‘욱’하는 심정이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은 없어야한다. 이번 사건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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