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들의 2004년이 축제 분위기 속에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와 LA 시의회가 매년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한인들은 이민 100년의 역사 끝에 마침내 ‘우리의 날’을 갖게 되었다. 지난 1년에 걸친 이민 100주년 기념 축제가 ‘미주한인의 날’이라는 결실로 피날레를 장식한 셈이다.
‘미주 한인의 날’ 제정은 다민족 사회에서 이름 없는 한 소수민족으로 살던 코리안 아메리칸이 이제 명함을 얻었다는 의미가 있다.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한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만 해도 한인들이 코리안으로 대접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수많은 유색 인종중의 하나이거나 아시안 중의 하나, 혹은 잘해야 중국계나 일본계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미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 코리안이라는 개별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LA 시의회에서 타민족 시의원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거행된 ‘미주한인의 날’ 선포식은 그러므로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자긍심을 가질만한 이정표적 사건이다.
이정표란 이전과 이후의 흐름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점을 말한다. 이민 1세기를 마감하고 제2의 세기를 맞는 새로운 각오가 동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명함을 가졌다는 것은 명함에 걸맞는 내실을 갖춰야할 의무를 동반한다. ‘미주 한인의 날’이 제정되었다는 것과 그 날이 계속 기념되고 나아가 타민족 사회에서까지 기억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로시 하샤나나 욤 키퍼 같은 날들도 처음에는 유태인 커뮤니티 내에서만 지켜지던 개별 민족의 명절이었다. 이들 유태인 명절을 많은 교육구들이 휴일로 정하면서까지 같이 축하하는 것은 유태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저력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
‘미주 한인의 날’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민역사 보존이다. ‘한인의 날’은 한인 이민 역사를 기리는 날인데 그 역사를 보여줄 시설 하나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문제이다. 지난 한해 이민역사 보존의 중요성이 떠들썩하게 거론되었지만 일년이 지난 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미주 독립운동의 본향이라며 요란하게 복원사업이 진행되었던 대한인 국민회관 기념관도 개관식만 거창했을 뿐 개점 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다. 봉사보다 감투, 헌신보다는 이름내기, 화합보다는 단체간 이기주의로 시작만 있고 결실이 없는 일들이 그 동안 한인사회에는 너무 많았다.
지나간 이민100년과 함께 묻어야 할 구태들이다. ‘미주 한인의 날’ 제정은 축하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성숙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숙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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