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국 등반대가 히말라야에서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높은 K2봉을 오른 적이 있다. 그런데 베테런 산악인으로 꼽히는 P씨가 실족하여 추락사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등반대는 K2를 정복하고도 환호를 지르기는커녕 눈물바다를 이루었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P씨의 여자친구인 K씨가 그 다음해에 P씨의 영혼을 위로한다며 그의 영정을 히말라야에 묻으려고 푸모리봉 근처를 오르다가 그녀도 조난 당한 후 목숨을 잃었다. K씨도 한국에서는 잘 알려진 여성 산악인이었다. 한국 산악계는 1년 사이 2명의 아까운 인재를 잃은 셈이다.
베테런 산악인인 이들이 왜 목숨을 잃었을까. 이는 한동안 한국 산악계의 화제였었다. P씨는 K2를 마지막으로 공격할 때 굉장히 지쳐 있었다. 팀 리더가 “당신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하고 공격 포기를 비치자 아무렇지도 않다고 고집을 부리며 정상으로 향했다. 그는 공격 팀에서 빠질까 봐 몸 컨디션을 숨긴 것이다. P씨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는 후미에 쳐져 올라가다가 기운이 빠져 실족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앞에 가는 사람 들은 P씨가 실족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무리가 죽음을 부른 것이다.
그의 걸프랜드인 K씨도 무리를 하다가 비극을 당했다. P씨의 영정을 히말라야에 파묻는다고 베이스 캠프(5,500미터)를 가이드도 없이 오르다가 탈진하여 미끄러진 후 숨진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살아남는 비결은 여러 가지이지만 비극을 당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산에서는 무리하면 꼭 사고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겸허한 자세는 산악인의 필수조건이다. 등산은 체력단련의 스포츠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 분수를 파악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선에 도전하는 것이 등산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에베레스트나 K2를 오르는 알피니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은 왜 목숨까지 걸고 등산을 할까”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죽음의 지대’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메스너는 현재 살아있는 알피니스트 중에서 거의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인물이다. 인류 최초로 8,000미터 봉 14개를 모두 정복한 사람이다. 그것도 거의 무산소로. 그는 이 책에서 등산가들이 왜 죽음까지 각오하며 산에 오르는가의 본질을 설명한다. 메스너는 자신이 산 정상에 오르는 이유는 지성과 감성의 한계, 이성과 본능의 한계, 죽음과 삶의 한계, 존재와 비존재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사의 순간을 수없이 넘은 메스너다운 표현이다.
한계 도전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치밀한 준비와 겸허한 자세와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 알피니스트 정도의 등산 전문가가 아닌 주말 하이커도 마찬가지다. 특히 겨울 등산은 기후변화가 심하고 눈 속에서 길을 잃기가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가을에는 콧노래를 불러가며 올라가던 트레일도 눈오는 겨울에는 난코스가 된다. 거기에다 안개까지 끼는 날에는 조난 당하기 안성맞춤이다.
요즘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등산 붐이 일고 있는데 ‘독학파’ ‘나홀로파’가 많다. 그냥 무턱대고 오르면 등산인줄 아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 할 때가 있다. 호루라기, 플래시, 아이젠은 필수며 초컬릿과 비프저키 같은 비상식량도 꼭 배낭 속에 넣어두어야 하고 앞뒤에서 무전기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산을 깔보지 말고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겨울산행이 그렇다.
▲고침-지난주 칼럼에서 ‘2만9,200시간’을 ‘2만9,200일’로 바로 잡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