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호 (화가)
여러 변명을 생각해 보아도 별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나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실 나는 보통 내 체격의 다른 이들보다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메타볼리즘이 높은 체질인 관계로 거의 매 네시간마다는 식사다운 식사를 해야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좀 특이한 체질인 탓이다. 한참 클 때야 누구나 먹성이 좋지만 나의 체구가 워낙 나의 큰 먹성과 안 어울리는 탓에 늘 먹보라 놀림을 당했다.
지금은 시푸드 부페가 여러 곳에 생겼지만 내 학창시절만 해도 샌타모니카 해변가에 있던 라이트하우스가 거의 유일한 곳이었는데 가끔 한인 친구들과 한 차에 가득 타고 가서 먹을 때면 꾸준히 먹어대는 나의 식사량에, 또래의 내로라 하는 먹성 좋은 남자들마저 두 손을 들고는 했다.
결혼을 하기까지 오래도 같이 다니며 숱한 음식점의 오인분 메뉴를 한끼에 둘이 처치한 남편도 대식가이다 보니, 어느 모임이든 우리 둘이 같이 뜨면(?) 준비한 음식이 모자라니 꼭 연락을 하고 오라고 놀리는 친구들마저 생기는 먹보 부부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우리도 성장기가 한참 지난 나이이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민망할 정도로 많이 먹던 양은 줄었지만, 자기 부모를 닮은 우리 아이들과 식당을 찾게 되면, 우리 집의 특성상 매번 갈 때마다 겪게 되는 관례들이 있다.
먼저, 키 차이가 한자나 되는 우리 부부가 들어서면 앉아 있던 손님들은 우리 부부를 번갈아 쳐다본다. 속으로 나의 땅딸함을 확인하겠거니 하면서 아이들을 차례로 들여보내면 이번에는 셋이나 되는 크고 작은 우리 딸아이들을 헤아려보고는 다시금 아이들과 우리 부부를 번갈아 쳐다본다.
맛있는 음식을 남의 손을 빌어 맛보는데 그 정도야 하고 참지만 보통의 한국식당들은 넷이 앉는 식탁이 많은지라 잠시는 다섯이 서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자리를 마련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킬라치면 이번에는 주문 받는 아가씨를 설득해야 한다. 어린애들이 섞인 다섯 식구가 보통 오륙인분을 시키니 먹어보고 시키라며 주문을 다 안 받아주는 까닭이다. 이럴 때는 얼른 남으면 싸가겠다고 말해서 고민하는 아가씨를 안심시켜 주어야 음식주문을 마칠 수 있다(물론 남겨서 싸 가는 날은 거의 없다).
음식보다 먼저 날라 오는 반찬이 삽시간에 떨어지기 시작할 때면 식당에서는 우리 식구들의 먹성을 눈치채기 시작하고 보통 한두 번 간 식당에서는 그릇마다 싸그리 비우는 먹보 다섯을 기억하고 주인 아주머니들이 반겨주시는 단골이 된다.
일전에는 선배 아버님의 상을 당하여 입관예배를 마치고 한인타운의 모 부페에서 거의 십년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 다같이 식사를 하는데, 둘러앉은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식탁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무심코 고개를 들고 보니 내 눈과 마주친 어느 후배 왈 그 먹성이 어찌 됐나 궁금해서. 아직도 그렇게 많이 먹수? 내게서 다른 좋은 점도 찾으면 영없지는 않으련만 어찌해서 사람들은 나의 먹성만 기억하는 것인지.
요즘 보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궁중음식이 나올 때마다 ‘아! 맛있겠다’를 절실 표정으로 외치며 입맛을 다시는 두살짜리 막내를 보노라면 확실히 먹성도 유전이구나 싶다. 먹보 다섯이 그동안 줄기차게 먹어 버린 음식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우리아이들은 다른 좋은 일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식당에서 혹시 먹보 가족을 만나시는 분들은 너무 오래 쳐다보시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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