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전 나는 항공모함 프린스턴 소속 사진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다. 한국전 개전 37개월을 맞은 그때 프린스턴은 한반도 해안에서 몇마일 떨어지지 않은 동해 해상에 머물고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진기자로 일했던 내가 해군에 들어온 후 맡은 일은 정찰기들이 찍어온 사진 현상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1953년 7월27일 나는 함장으로부터 곧 진짜 뉴스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전을 끝내는 정전협정이 판문점에서 마침내 조인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보다 8년 전인 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의 상황을 나는 생생히 기억했다. 사방에서 즉석 축제들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항공모함 곳곳에 10여명의 사진병들을 배치하고 선상 5.000여명 병사들의 반응을 찍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당시 프린스턴에서는 11명의 전투기 조종사와 3명의 사병을 교전 중 잃었었다. 정전 발표가 나오면 감격의 함성이 터져나올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막상 확성기를 통해 전쟁이 끝났다는 발표가 나갔을 때 선상에서는 도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두가 평소처럼 하던 일을 계속 할뿐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사진병들은 별로 찍을 사진이 없었다. 실망한 나는 정전이 수개월 전부터 예상이 되었고, 그래서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친 탓에 그런 무관심을 보였을 것으로 나름대로 이해를 했다.
그러나 그런 무반응은 어떤 면에서 ‘잊혀진 전쟁’의 징후였다. 2개월 후 모항인 샌디에고로 돌아왔을 때 환영의 환호는 1시간만에 끝났다. 환영 퍼레이드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많은 미국민들이 의식도 하지 않던 중에 전쟁은 끝난 것이었다. 승자도 없고 항복한 자도 없는 전쟁이었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 날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돼 있고, 3만7,000의 미군은 여전히 휴전선 남쪽에 주둔해 있다. 북한은 계속 핵무기 개발 및 배치 위협을 하고 있다. 반면 남한은 점점 더 미국 우방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고 있다.
정전의 날 왜 그렇게 무덤덤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예언적인 것만 같다.
존 제이 데일리/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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