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0세를 바라보는 선교회 여전도사님의 아버지께선 한국에 계신다. 그 아버지가 지난 5월5일 전도사님께 전화를 하셨다. “오늘이 어린이 날인데…, 뭐 좀 맛있는 것은 먹었냐? 어디 좋은데 놀러가지 그랬어? 거기도 어린이 대공원 같은데 있지? 김밥이라도 싸서 좀 가지 그랬어… 오늘 하루종일 네 생각만 했다. 옆에 있었으면 맛있는 거라도 사 줬을 텐데…”
전도사님은 창피하다고 툴툴거리고 난리다. 5월5일이면 아버지가 전화해서 꼭 어린이날 축하 인사를 하신단다. 웃기기도 하고, 건방진 말로 귀엽기도 하고… 자기가 지금 몇 살인데 저러시는지 모르겠다고, 씩씩거리는 전도사님의 얼굴이 그래도 아주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이 늙어도 항상 가엽고, 어리고, 보호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거기에 더하여 언제나 자녀가 내 품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나도 4명의 자녀를 둔 부모로서 뚝뚝하여 사랑의 표현은 잘 못하지만 그렇게 나의 자녀들이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행여 기침이라도 하면, 내가 대신 기침하고 싶고, 끼니를 거르는 것 같으면, 안타까워 도시락이라도 싸다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빠! 콧소리 한번에 내 안에 있는 심장 한 조각까지라도 모조리 꺼내어 주고 싶은 그런 마음들… 그러나 단 한번도 이런 마음을 내보인 적도 없는 부족한 아빠였다. 이렇게 어설펐던 사이에 벌써 큰놈, 작은놈이 다 커버려 제각기 친구들하고 시간 보내기에 정신 없어졌고, 아빠는 뒷전이 되었다. 셋째 놈과 막내딸이 그나마 아직 어려서 아빠의 기쁨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의 뚝뚝함은 그대로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점점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얼마 전에 셋째 녀석이 이제 초등학교도 졸업을 안 했는데 마음에 두는 여자가 생겼는지… 하긴 아빠를 닮았으면 그런 데에는 매우 빠를 것이니… 이해를 해야지 하고는 있지만, 돈을 달라고 조르고, 졸라 결국 거금을 손에 쥐었고, 지들이 좋아하는 카드에, 캔디에, 열쇠고리에, 별 희한하게 생긴 것들을 예쁘게 싸서 누구를 갖다준다고 했다.
아니, 지 아버지 생일날에는 카드만 달랑 써서 주는 뻔대 없는 녀석이, 결혼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계집아이에게 뭘 그리 바리바리 싸다 주는지…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만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하긴 다른 부모들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잘도 코치하면서 정작 나는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쑥스러워 아이들에게 제대로 한번 하지도 못했다. 한국 아버지들이 거의 그렇듯 짝사랑하듯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화난 척, 엄한 척, 점잖은 척하며 아이들을 대하였다. 그런 아빠가 무엇을 아이들에게 바랄 수가 있겠는가!!
자녀들을 품에 안아야 할 때 안고 있지 못했던 아빠였었다. 정작 자녀들이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사랑한다 말해 줄 용기가 없었던 아빠였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성장했고, 아빠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무언의 소리를 질러댈 때 지금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나의 자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에게서 친구, 학교, 사회… 등등 아이들이 자신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냥 묵묵히 감춰진 사랑으로 섭섭해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아빠가 부담스럽지 않게 나의 자녀를 그들의 인생 안으로 보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이제 아빠가 아닌 아버지로서는 실패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말이다.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