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사랑 10년…내친김에 ‘공방’까지
인도와 네팔을 다니며 제법 예쁜 종이를 많이 대해봤지만 한지만큼 고운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얇은 종이 한 장에도 조상들의 예술 감각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색색의 종이들을 붙여 만든 한지 공예품은 처마 밑 단청 같기도 하고 명절날 입었던 색동 저고리의 소매 같기도 하다. 또 한지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세찬 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창호지를 떠올린다면 왜 그런지 쉽게 수긍이 간다.
정석인(53), 안순옥(58), 김숙희(62)씨는 약 10여 년의 세월 동안 한지를 오리고 붙이며 살아온 쟁이들. 한지 공예의 아름다움에 폭 빠진 세 선녀들은 지난 달 윌셔가에 작품 활동과 연구, 후진 양성을 위해 ‘한지나라’라는 공방을 차렸다. 작년 한국 문화원에서 합동 전시를 하기도 했던 세 여인들의 한지 사랑과 솜씨는 이제 알려질만큼 알려져 교외 주부들에게 초대되어 클래스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들이 밤을 새며 만들었던 작품들에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 장롱, 장식장은 그 자태가 연지 곤지 찍고 족두리 올린 신부처럼 곱디 곱다. 나무보다 탄탄한 팔각형 과반,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는 예물 상자, 받기가 황송할 정도로 예쁜 반상, 그 밖에 반지고리, 필통, 등갓, 쟁반, 부채, 바둑판 등 자잘한 생활 용품에 이르기까지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의 목록은 끝이 없다. 한 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예쁜 것 알아보는 여자들은 손을 떼질 못한다.
나무도 아닌 종이로 어떻게 저런 것들을 만들었을까. 겹겹이 붙이면 화살도 관통하지 못할 만큼 강해진다는 것이 한지. 그래서 장수들을 위한 갑옷도 한지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던가.
하얀 속지를 속옷처럼 입힌 후 색색의 종이를 붙인 작품들은 비단 옷 입혀놓은 여인네들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띤다. 공방의 최고 장인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입이 벌어질 만큼 모양새가 고운데 정석인씨는 누구든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한지공예라며 초보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실제 약 15달러의 재료비로 일주일 정도만 소요하면 소품 하나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보다 많은 이들이 이 멋진 취미를 공유했으면 싶어진다.
옛 여인들의 지혜, 풍류, 멋을 21세기에도 고스란히 되살리고 있는 세 친구들은 더 많은 이들과 한지 공예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주부들을 위한 한지 공예 클래스를 이달부터 마련할 예정이다. 화·목·토 사흘 동안 오전 10시-오후 7시까지 하루 세 차례의 클래스가 있다고 하니 편리한 스케줄에 맞추면 될 것 같다. 한지나라는 4055 Wilshire Bl. (Wilshire와 Norton 코너) 416호에 있으며 문의는 (626) 780-8844, (818) 640-7810, 또는 (323) 933-9764로 하면 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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