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 반대하는 프랑스·독일은 늙은 유럽-
"럼스펠드 발언은 신(新)식민주의 오만"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22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을 ‘늙은 유럽’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양국이 발끈하고 있다.
“미국의 오만한 신식민주의를 드러낸 발언”등의 원색적 비난이 정파를 초월해 터져 나오면서 양국의 반전 여론이 완전히 굳어지고 거센 반미로까지 확산될 분위기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과는커녕 “미국 편이 더 많다”라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의 감정 싸움이 격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늙은 유럽”
럼스펠드 장관의 문제 발언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22일 이라크전에 반대 입장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 그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외신기자 회견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더 이상 유럽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늙은 유럽이다”고 비난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가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맞은 이날 양국을 유럽의 새로운 중심으로 선언한 데 대해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로 유럽의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들끓는 프랑스와 독일
프랑스와 독일은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2차 세계대전 후 막강한 경제ㆍ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에 세계 패권을 내주고 최근 경제난까지 겹쳐 가뜩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터였다. 특히 영국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의 동지’들이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면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폴커 뤼헤 독일 하원 외무위원장은 “럼스펠드는 외교관도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장 프랑소아 코페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미국은 이라크 문제의 현명한 해결을 위해 ‘늙은 유럽’의 지혜를 배우라”고 비꼬았다.
그 동안 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비난해 온 양국 야당도 미국 성토에 동참했다. 프랑스 사회당의 마르탱 오브리 의원은 “갈수록 규칙도 없이 세계를 혼자서 통치하려는 미국의 오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기사당 출신의 베른트 포셀트 유럽의회 의원은 “럼스펠드의 발언은 신식민주의적이며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유치한 이분법”이라며 “미국은 유럽의 파트너이지 보호자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언론들도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 슈피겔은 23일 “럼스펠드의 무례한 발언은 독일과 프랑스의 적대감을 자극함으로써 부메랑처럼 돌아가 미국에게 치명타를 안길 것”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프랑스는 미국에게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국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아랑곳 않는 미국
이 같은 거센 반발에도 미국은 “두 나라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쟁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럼스펠드 장관은 23일 “내 나이엔 ‘늙은’이라는 말은 친애의 표시”라며 발언의 책임을 교묘히 피해 나갔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에 사과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양국과 동맹을 파기할 생각은 없다”고만 답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많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양국의 반발을 평가절하했다.
뉴욕 타임스는 23일 “미국은 전세계에 대해 ‘충성도 테스트’를 한 뒤 떨어지면 가차없이 내버리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으로 부시 행정부가 참을성 없고 무례한 ‘카우보이’라는 것이 또다시 입증됐다”고 비난했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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