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폐의 뒷면에는 한결같이 “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달라의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달라는 세계의 화폐로 군림하고 있고, 여전히 미국은 경제 강대국의 위치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다 잘사는 나라는 아니다. 최근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한 가구당 사용하고 있는 크레딧 카트수는 15개, 쓰고 갚으면서 매년 지고 있는 빚은 평균 7천불 내외라고 하였다. 미국이 이렇게 다 잘사는 나라가 아닌 것은 못사는 나라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지구촌에는 부자이면서도 청빈하게 산 사람들과 가난하면서도 부자답게 산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방콕의 부촌 ‘수쿰빗’에는 초대형 저택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그 주변에는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각종 노점상들과 함석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판잣집들이 늘비하다. 그런데 한 노점상 주인은 담장 안의 부잣집을 가르치며『차가 12대나 있는 중국인 보석상 집이라면서 이 집에서 전기선을 하나 끌어 줘 밤 장사를 한다면서 이 고장 부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담장을 벽으로 삼고 살고 있는 것을 개의치 않으며 가끔 도와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것이 태국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방식이다. 부자들은 주변의 빈자들에게 관대하며 빈민들은 부유층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벤츠 차를 보면 ‘시기심’ 대신 ‘인과(因果)’로 생각하는 것이 태극 빈민들의 사고방식이다. 몸에 관용(寬容)과 연기사상(緣起思想)이 벤 까닭이다. 흥부가 가난하면서도 가난을 개의치 않고 살았다는 얘기와도 같다.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빈부의 차이는 있어도 빈부가 서로 외면하는 일은 없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의 좋게 산 것은 향약(鄕約)의 제약을 받아서도 아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은 그 이전부터 있엇던 우리의 생할 풍속도였다. 그리고 우리 선인들이 음식이나 옷차림이나 집에 대해 겸손했던 것은 그렇게 잘 보일 줄 몰라서가 아니고, 스스로 행복을 누수(漏水) 시키지 않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갖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면 갖은 것까지 잃게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런데 다음은 이와는 정반대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며 흥분하는 어느 택시 운전 기사의 말이다. 『사회가 이래서는 안됩니다. 있는 자는 더욱 흥청거리고 없는 자는 더욱 쪼들리고 있어요. 이젠 악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기사 식당에 가 보세요. 전부 양담배만 피웁니다. 한푼 두푼 모아 봤자 무엇합니까.』 인천 공항에서 시내 쪽으로 무섭게 달리면서 눈에 불을 켰다.
지구촌은 지금 물신주의(物神主義)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아니 그렇게 된지 오래다. 우리 나라의 경우 60-70년대 배고픔을 이겨 보자는 처절한 산업화 정신이 아니라 21세기는 부른 배를 더욱더 채워 보자는 물신주의 세상이 된 것이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한국의 한 대학 총장 부부가 자기 돈이 아니라고 판공비를 부당하게 수억씩 낭비하고, 가장 정신적이어야 할 종교가 물량주의에 젖어 가고, 사람의 성공 척도를 1류대학 나와 1류 돈벌이 직장을 가지고, 대형 호화주택에서 살면서 고급 벤스 자동차 굴리는 것으로 재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느 누가 「돈이면 다냐?」고 소리를 높인다면, 분명 그는 무식한 사람이요 웃음거리로 치부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모은 사람들이 있다. 웃음거리도 아니고 무식한 사람들은 더욱 아니다. 기초 인문학 분야의 교수들이다. 『물질의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필요조건(必要條件)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조건(充分條件)이 되지못한 다는 인식, 이러한 정신을 우리 모두가 갖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부의 축적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이지만 그것이 모두 충족되고도 모자라는 ‘무엇’이 항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터에서 자식의 신발을 흥정하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처럼,『돈을 벌자고 앞만 보고 뛰는 사이에 자녀들이 탈선을 했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자녀가 되지 않았는지, 돈 때문에 인간다운 가치들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돈 때문에 내 양심 속에 순수와 순정, 감격과 눈물, 정조와 의리, 예의와 염치가 금이 가지 않았는지, 우울증이 있다면 돈 때문인지, 의식적이건 무의식에 각인(刻印)된 습관이건 지금 정신없이 돈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등 삶이라 불리는 오늘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볼일이다.
그런데도 얼마전 본국의 20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46%가 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KBS 1의 의뢰로 R & R(Research and Research)이 조사한 결과다. ‘돈’만이 행복의 척도라는 말과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말은 같지 않지만 행복에 정가가 붙어 있다고 보는 비율이 반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만 8천여 케이스의 88%가 바로 돈 때문이라는 영국에서 조사된 보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유대인의 말 처럼 “돈이 있어도 걱정, 돈이 없으면 더 큰 걱정"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행복>이란 등식은 있을 수 있지만, <돈〓만족>이란 등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네 살배기 아들이 ‘아빠는 왜 부자가 아니야’라고 진지하게 물어왔을 때, 한 30대의 가장은 “부자 남편, 부자 아빠" 못 된 스트레스를 느끼고, 서울 도심 호텔 옥상에 올라가 막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세태를 풍자하여 뿌린 일이 있었다. 관심거리는 돈을 뿌린 청년보다 뿌렸다는 3백70만원(약 3천불) 가운데 회수된 돈이 8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회수율이 2%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이곳 다운 타운의 피바디 호텔에서 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라고 별천지 일리 없으니 피차일반일까.
/ikhchang@aol.com <맴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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