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먼길을 지나 보금자리로 되돌아온 양, LA로 돌아와 조그맣게 오피스를 열고 이렇게 자리에 앉아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새로이 깔아놓은 소나무 향이 나는 듯한 이 오피스의 마룻바닥을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몇 번째 닦아 깨끗이 하며 오늘을 준비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22년 전, 한 살도 채 안된 첫 아들을 안고 아내와 함께 부푼 꿈에 가득히 미국으로 향한 우리 가족을 첫 번째로 반겨 준 이 도시 LA. 나는 그래도 더 날아 동부로 가고 싶어 봄, 여름에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깊고 은은하며 겨울에는 잔설이 얕게 깔려 있고 소슬한 찬 공기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나무가 풍성한 버지니아의 리치몬드에 자리를 잡았다.
가난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의 조그만 나라 한국의 신출내기 의대졸업생. 그때는 아직 미국 의사자격증이 없던 나, 그래서 수술실에서 수술조수로만 일했던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변의 미국인 의사와 간호원들은 따뜻한 정을 나눠주었다.
당직 날이면 수술 장 옆에 달린 라커룸의 조그만 책상에서 미국 의사자격시험을 준비하던 나를 눈여겨본 의사중 어떤 이는 장장 넉 장의 추천서를 써줬다. 중서부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 과장이 나를 수련의로 뽑을 때 그 추천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나는 외과의사를 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실망도 많이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서 성경책의 마가 복음을 펼쳐보니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오그라든 손을 펴주신 예수님, 절름발이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야말로 진정 재활의학의 선구자가 아니셨던가. 그 후로부터 나는 얼마나 내가 재활의학을 전공했음을 감사 드리고 있는지 모른다.
17년의 긴 세월, 수련을 마치고 개업한 클리블랜드의 삶. 커다란 호수가 있고 물이 풍부하며 수목이 풍성하지만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고장. 많지 않은 한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달래며 정을 나누며 추위를 이겨왔다.
떠나올 때에 많은 이들이 보여주신 사랑, 애절한 눈물. 그래서 20년을 지휘하던 성가대의 마지막 미사 때 교우, 그리고 나 사이에 흐르던 마음의 나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곳 LA는 ‘되돌아 온’ 나의 고향이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곳 샌타모니카의 해변에 멈추어진다. 자연의 색다른 아름다움, 야자수 사이로 지는 태양이 바다로 가라앉는 찬란한 광경이 호숫가보다는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나의 향수를 추스러 준다.
정겨운 친구들이 많은 이곳. 인고의 삶을 사시어 무뚝뚝한 표정 가운데에 엷은 웃음을 보여주시는 나의 부모님 같으신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많으신 이곳을 나는 사랑한다.
되돌아 온 이곳 LA, 내가 선택한 이 고향에 조그만 의사 오피스를 열고 자리에 앉아 하루의 기도를 올리며 시작하는 이곳의 삶. 나는 나의 마음을 열어 모든 것을 드리고자 한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넓게 열린 나의 가슴을 드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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