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과 환희로 한국을 뒤흔들었던 월드컵 축제가 막을 내리고 있다. 졌지만 이겼고, 아쉽지만 기쁜 경기였다. 경기에 졌을 때 쏟아지는 비난과 원성, 분노가 없이 코리안의 가슴 가슴마다에 훈훈한 긍지와 출렁이는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이번 월드컵은 지구촌 한민족을 뒤흔들어 깨운 감동의 잔치였다. 조국과 미주 한인사회 곳곳에서 열광은 불길처럼 들끓었고, 환희는 강물처럼 휘몰아쳤다. 파도와 광풍이 거세면 거셀수록 나는 환희보다 두려움을 더 느꼈다. 어떻게 월드컵에 저토록 환호할 수 있고, 어디서 저토록 거대한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일까.
월드컵 16강 진출이 꿈이라고 했던 한국이 8강, 4강이 되어 세계 축구 속에 우뚝 섰으니 그 성취는 자랑이자 긍지이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목표를 눈부시게 달성하는 한국 젊은이들 모습에서 민족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한민족은 안 된다는 자조와 능멸의 자기패배를 질타하면서 세계 수십억 인류 가슴에 찬탄의 깃발을 꽂은 젊은이들을 통해 민족 한사람 한사람은 거기서 위대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도자를 잘 만나고, 격려하고 등을 두드려 줄 때 민족은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비상할 수 있다는 감동을 가져다 준 것만으로도 월드컵은 감사하다.
그런데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민족을 뒤흔든 함성과 환희가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일까 하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얻을 수가 없다. 광기 서린 축제마당에서 응어리진 한과 열망이 넘치고 있다.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능력과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한민족은 수 없는 좌절과 수난을 겪었다. 한과 열망이 월드컵으로 분출하고, 이 목마름이 감정적 집단주의와 결합해 코리안 응원문화를 창출한 것은 아닐까. 월드컵 축제가 끝나면 4천만 국민들은 다시 혐오와 절망이 뒤엉킨 현실 정치와 부조리의 사회 속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월드컵에 넘쳤던 경이로운 민족의 에너지가 어디서 구심점을 얻고, 어디서 분출구를 찾을 수 있는가. 월드컵 축제를 통해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들 에너지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물길을 찾을 때 민족은 위대한 웅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에너지가 부정적이고 대결적으로 흐를 때 민족이 얼마나 무섭게 추락할 수 있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축구를 세계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한민족이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한국이 위대한 조국으로 도약하려면 붉은 악마의 광기를 이성으로 내면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축구가 세계로 발돋움한 것은 열광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히딩크라는 냉철하고 사려 깊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의 비난과 변덕스런 인심에 눈 돌리지 않고 히딩크는 철학과 지도력으로 한국 축구에 구심점을 심었다. 히딩크는 뜨거운 감성의 애국자가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전문가였다. 한국인들은 열광하는 애국심에 히딩크의 이성과 전문성, 지도력의 뜻을 배워야 한다.
에너지가 아무리 거대해도 렌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결코 불꽃을 태울 수가 없다. 한민족 에너지가 아무리 경이로워도 구심점을 찾지 못하면 에너지는 불평과 불만, 질시와 분노가 되어 한반도 산천을 방황할 것이다. 월드컵은 한국 역사에 새로운 분수령을 마련해 주고 있다.
한국인 가슴을 터지게 한 감동의 신화를 흩어지게 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한곳에 모을 때 한국은 위대한 신화를 창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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