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두 가지 방송과 언론의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첫째는 6월 5일, 7일, 12일 등 세 차례에 걸쳐서 ABC방송의 나이트라인을 통해 "숨겨진 삶(Hidden Lives)"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탈북자들에 대한 실상보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원래 한국의 프리랜스 작가 김 정은씨의 취재작품이다. 김 정은씨는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그들에 대한 실상을 증언하기로 결심하고 1999년 3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중국 동북부의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소형 디지털 카메라에 탈북자들의 생생한 실상을 담아냈다.
한 시간이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 토굴을 파고 숨어사는 김 간수씨 가족을 비롯해서 인간밀매꾼에게 팔려갔다가 도망친 여인의 기구한 사연,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을 하나씩 남에게 넘겨주면서 절규하는 부모와 아이들의 몸부림 등을 고스란히 렌즈에 담아냈다. 테드 카플을 비롯한 나이트라인 제작진은 이 필름을 처음 보는 순간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필름을 처음 보는 순간 방영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토론이나 논의가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미 국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부터 나이트라인의 데스크에는 엄청난 메일이 폭주했다. 대부분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이야기다.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라는 반응들이었단다. 나 역시 이 방송을 보면서 외면할 수 없는 아픔으로 속울음을 울었다. 함께 보던 아내와 딸아이의 눈시울도 촉촉해졌음을 보았다. 그래 누구인들 외면할 수 있으랴.
또 한 가지 기사는 북경주재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탈북자들이 뛰어 들어왔고 중국 공안원들이 영사부 안까지 뒤쫓아 와서 그들을 끌어내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류하는 한국 영사부 직원들에게 폭행까지 가했다는 기사이다. 이 사건은 결국 그 당시에 이미 한국 영사부에 들어와 있던 망명신청자들을 포함해서 24명 전원을 제 3국을 거쳐 한국으로 보낸다는 합의로 일단락 되는 듯하지만 한중 양국사이에 쉽지 않은 외교적 현안이 되어있다.
한국정부는 한국영사부가 무단 침입 당했고 외교관들조차 신체적인 폭행을 당한 것은 명백한 주권침해라는 관점에서 주권국가의 자존심이 상처 입은 사안이라는 보는 강경한 입장인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런 의미의 외교적 자존심이 아니라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는 민족적 양심이라고 본다.
ABC방송을 통해서 나타난 반응에서 보듯이 이제 북한의 탈북자 문제는 더 이상 망명신청자 한 두 사람씩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루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있을 중국과의 충돌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아니다. 이젠 이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 있다. 이미 탈북자는 30만 명이 넘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민족공동체의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애쓰고 있는 것은 몇몇 민간단체들과 선교사들뿐인 것처럼 보이는가? 왜 한국정부는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굳이 회피 또는 외면하려고 하는가? 난민지위 부여라든가 난민캠프 설치 등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야할 주체는 더 이상 NGO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다. 이미 미국의 의회에서도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개선을 촉구하고있는 탈북 난민의 인권에 대해서 유독 한국정부만은 그리도 소극적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과의 외교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북한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이 문제는 외교적 사안이기 이전에 회피할 수 없는 민족의 생존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중국입장에서 보면 탈북자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뜨거워도 뱉을 수 없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감싸안아야 할 내 핏줄의 생존문제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민족의 운명이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도 없이 남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졌던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내 민족의 운명을 다른 나라 의회의 결의안이나 NGO단체의 활동에 맡겨놓아야 할 것인가. 통일은 우리의 꿈이다. 어차피 우리는 북한의 2,300만 형제를 껴안아야 한다. 그런 우리가 30만 탈북자들을 껴안지 못한다면 우린 통일을 말할 자격도 없다.
중국의 국경 산중에서 굶주려 죽고, 인신매매시장에서 팔려가고 있는 저들을 외면한다면 통일 이후에도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경제적 문제나 외교적 장애 때문에 민족의 생존을 외면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도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말라고 촉구하신다. 더 이상 민간인들과 인권단체의 활동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한다. 민족의 양심을 걸고 모든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탈북자 문제를 정면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 아니라면 그것은 민족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심각한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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