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에세이
▶ 조윤성<부국장겸 특집1부장>
나는 과연 그곳을 다녀온 것인가 아닌가. 몇 개월전 요세미티를 주마간산으로 지나온 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물리적으로 나는 분명 요세미티속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그곳을 느끼고 오지는 못했다. 아니 느낄새가 없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단체관광 이었던데다 일정이 약간 늦어진 탓에 요세미티에 발을 디딘 시간은 모두 해 40분을 넘지 못했다. 엘카피탄을 지나 해프돔에 도착하니 가이드는 “앞의 일정이 지체되는 바람에 시간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30분을 주겠다”며 일행을 내려 놓았다. 우리는 부랴부랴 배경 좋은 곳을 이리저리 찾아 급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다 곧바로 다시 차에 올라야 했다.
요세미티에 관한 기억은 현상한 후 한번도 들춰보지 않은 사진 몇장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담당하고 있는 ‘위크엔드’ 섹션에 쓸 ‘독자들 주말나기’ 사진이 필요해 얼마전 여행을 다녀온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핀잔이 돌아 온다. “아직도 여행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냐”는. 친구의 말인즉은 아이들 어릴때는 이것도 추억이다 싶어 열심히 카메라를 챙겼는데 지금은 아예 놓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여행 내내 카메라 챙기기가 귀찮기도 해서지만 카메라 없이 다니다 보니 자연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올뿐 아니라 여행전체가 한결 여유로와 지더라는 것이다. 좀 현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의 셔터를 누르면 되지 않느냐”는 말인데 현상·인화하는데 돈도 안들고 언제 어느곳에서든 바로 꺼내 볼수 있으니 이래저래 편할 것 같기는 하다.
‘현장 유재증명’ 수단으로 여행지에서 사진 찍기 좋아 하는 심리를 ‘선’보다 ‘점’을 중시하고 관광대상을 사유화 하려는 욕구가 유독 강한 우리 민족의 성향 탓으로 분석한 문화학자도 있지만 정말 그런 성향이 없지는 않은 듯 하다. 그래서인지 단체관광 상품의 일정을 보면 사진 찍을 정도의 여유 밖에 없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품들이 인기가 있는 것은 그만큼 한인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여행을 떠날때는 꼭 카메라를 챙겨야 한다는 의식은 우리들이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정형화 된 코드의 하나이다. 카메라 없이도 얼마든지 여행을 추억으로 남길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은 코드에 그만큼 길들여져 있다는 증거이다. 마치 어느곳에 가면 무엇 무엇은 꼭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처럼 말이다.
이런 코드에 몰입하다 보면 여행의 진정성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한 여행기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이 사람이 방문했던 곳은 뉴욕이었다. 뉴욕하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자유의 여신상,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월드 트레이드 센터(지금은 사라졌지만)등이 꼽힌다. 물론 이곳은 다 둘러봤다. 그런데 이 여행자는 자신의 여행이 비로소 완성된 곳은 지하철을 잘못 타 내린 할렘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두려움 속에 시커먼 할렘을 거닐어야 했던 추억이야말로 자신의 뉴욕여행을 진정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밝힌다.
코드화된 관광도 좋지만 가끔, 정말 가끔씩은 코드를 깨는 여행길에 나서 본다면 어떨까. 카메라를 놓고 도식화된 코스를 벗어나 발길 닿는대로 가본다면 예상치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사진 한장 건질수 없다해도 대신 풀내음과 벌레 울음, 물흐르는 소리가 더욱 오랫동안 그리고 더욱 진하게 코와 귓전을 맴돌게 될 것이다.
사족 하나. 발레 파킹을 하는 멕시칸 청년이 다가 와 “한국사람이냐”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자기는 수천달러를 들여 일본서 열리는 멕시코의 월드컵경기를 관전하는 관광상품을 샀다며 자랑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분명한 이 청년에게 수천달러는 몇 달동안 입지도 먹지도 않아야 모을수 있는 거금일 터이다. 그런데도 축구 보러가는데 아낌없이 썼다는 것이다. 부자되기는 힘들겠다 싶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일상의 코드를 깨뜨리며 흥분과 활력을 찾아가는 용기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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