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아들 때문에 조국의 안팎이 온통 시끄럽다.
21세기 국제화시대에 한국은 어째서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의 아들’ 문제로 한 세상을 보내야만 하는지 도대체 한심하고 답답하다.
DJ(김대중 대통령)가 누군가.
과거 독재에 맞서던 민주투사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아닌가. 그런 DJ가 어찌 아들 문제로 온갖 곤욕을 치러야 하는가. DJ가 역사적인 여야교체로 당선되던 날, 그 현장을 취재했던 남다른 인연때문인지 안타깝기만하다.
1997년 12월19일 새벽 2시, 여의도 새천년민주당 당사앞의 환호와 한(限)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 선거를 마치고 서둘러 호남선을 타고 왔다는 일단의 아주머니들이 서로 부등켜 앉고 엉엉 우는 모습이 선하다. 수백명이 모인 당선자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역자의 영어가 틀렸다며 직접 바로잡아주던 틀림없는 DJ가 지금 왜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가.
DJ는 정말 몰랐을 것이다.
YS의 아들 현철이가 국정을 농단하고 IMF사태로 난파 직전의 조국을 구해달라며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던 역사적 순간을 바로 옆에서 똑똑히 지켜봤던 자식들이 어찌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 할 것이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고생을 같이했던 정치적 동지 맏아들 홍일이가 8억원이 담긴 사과박스를 3개나 받은 의혹을 사고 삼형제중 제일 똑똑했던 둘째 홍업이가 진승현으로부터 그렇게 어설프게 수십억원을 받았다고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또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사춘기의 홍걸에게 준 충격을 생각하며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말못할 죄책감을 느꼈던 바로 그 막내아들. 인물 좋고 심성도 고와 누구한테 해꼬지 한번 못하던 홍걸이가 아닌가. 그런 홍걸이가 최규선이라는 희대의 협잡꾼과 같이 놀아나고 현찰이 든 골프백으로 수억을 받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아 권력을 잡고 나면 탐욕이 생기고 그래서 많은 희생을 낳고 끝을 낸다. 새로운 권력자는 그 희생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탐욕을 내고 결국 똑같은 희생을 낳는다. 그래서 ‘역사는 영원히 반복한다’고 하는가.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잘 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홍일 의원이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에서 항변했듯이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숨도 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바보처럼 살다가 실업자 배필을 만나 아버지가 건네주는 생활비로 평생을 살다가 죽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숨을 쉬데 앞 뒤 옆 사람들이 ‘대통령의 아들 숨소리가 들리는구나’하고 눈치채도록 크게 쉬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숨을 쉬고 현금을 넣은 사과상자나 골프 백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내일 모레다. 끝을 내야한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떳떳이 나타나 밝혀야한다. 법에 따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무죄로 판명되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비폭력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는 아들 할리라르가 무허가 과일가게를 하다 적발돼 법정에 섰을 때 아들의 변호사로 출두해 판사에게 법을 어긴 아들에게 엄한 중형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병 든 아내를 입원시키면서 자신은 관용차를 타고 가고 부인은 전철을 타고 가게 했던 김홍섭 판사의 일화도 있다.
DJ가 나서야 한다. 자칫하면 세 아들이 모조리 구속될 처지에 있는 그 아픈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DJ만큼 이 나라를 사랑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 대한 마지막 봉사일지도 모른다. 자식사랑을 나라사랑으로 승화시켜 나쁜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 한국의 정치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정확히 5년만에 대를 이어 다시 벌어지는 조국의 추한 모습에 곤혹스럽기만하다. DJ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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