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씨가 출연하는 LA오페라의 ‘마술피리’ 공연이 지난 달 24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개막됐다.
오페라에는 시종일관 무대를 오락가락하는 주연이 있는가 하면 결정적이 부분에 잠시 등장해 파문을 던지는 흡입력 강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그 가장 좋은 예가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이 아닐까 싶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카리스마와 기량에 흠뻑 취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다. 무대 공중에서 하강하며 분위기를 압도하는 제1막의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밤의 여왕’은 극에서 절치부심의 복수심을 지닌 어두움을 상징한다.
현란한 분장과 신비감을 자아내는 인물설정도 시선을 붙들지만, 제2막에 나오는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밤의 여왕’의 진가를 체험하게 된다.
콜로라투라의 높은 음역과 고난도의 기교가 총동원되는 이 곡은 듣는 이에게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전율을 함께 선사해 매력적이다. 객석에서 ‘브라보’가 처음으로 터지는 부분이 바로 이 아리아가 끝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의 동화인 ‘마술피리’에는 ‘밤의 여왕’만큼이나 톡톡 튀는 인물들이 살아 숨쉰다.
춘향전의 ‘방자’ 같은 천방지축 새잡이 ‘파파게노’(로드니 길프리 분)는 주인공 ‘타미노 왕자’보다 더 많은 갈채를 받는다. 바리톤의 수려한 음색으로 펼지는 아리아 ‘나는 새잡이’, ‘사랑하는 남자들은’ 등 듣기 좋은 곡들도 자주 부르지만 ‘파파게노’의 인기비결은 천연덕스런 감초역할에서 나온다. 관객들은 겁 많고 허풍 센 이 새잡이에게서 쉽게 편안함과 인간미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렉 페덜리가 분한 간교한 ‘모노스타토스’는 여주인공 ‘파미나 공주’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당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우스꽝스런 악한의 한심한 잔꾀가 늘어지기 쉬운 극의 진행에 활력을 던진다. 신적인 고승 ‘자라스트로’의 엄숙한 베이스 저음은 희화적이기 쉬울 분위기에 균형을 잡는 중심추로 존재한다.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동물들과 노예들도 시각적인 재미를 배가시키며 삼각형 유리피라미드에 시각효과를 낸 ‘물과 불의 시련’ 장면도 함축적이고 흥미롭다. 무대에 나오는 다양한 배역들은 테너, 소프라노, 베이스 등 각각의 음색을 유감 없이 살려 모차르트의 다채로운 아리아를 골고루 소화해내 풍성한 선율을 선사한다.
인물, 아리아, 세트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할만한 이 작품은 독일의 민속가극 징슈필의 색채가 강해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아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은 14일까지 계속되며 12일 밤 7시30분 공연은 ‘한국일보의 밤’으로 준비돼 있다.
jjrh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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