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초 LA에 정착했던 이민 선조들은 제2의 조국인 미국까지 침공한 일본의 제국주의 망령에 항거하기 위해 미군에 자원입대를 했으며 LA시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기원 시가행진을 펼치는 등 3·1운동으로 점화된 조국독립을 향한 민족적 열망에 또 한번 불을 지폈다.
일제에 맞서 싸우자는 일념으로 뭉친 100여명의 한인 남녀들은 1942년 8월1일 USC 인근 엑스포지션 팍에 집결,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 ‘한인연대’(Korean Regiment) 발대식을 가졌다. 당시 주 방위군 측은 전례 없는 한인들의 무더기 입대 신청에 당황했지만 결국 이들의 뜻을 받아들여 군복과 계급장을 지급키로 한 것이다. 
한인연대의 리더는 아서 김 캡틴이었다. 주 방위군은 이들의 나이가 대부분 30∼40대인데다 실전경험이 없는 점을 감안해 실전 배치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고 다른 소수민족의 참여의욕을 북돋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징적 의미를 띠었다. 한인연대와 함께 중국, 필리핀연대가 잇달아 창설된 것도 이 때였다.
        
        한인연대가 발대한 지 4주가 지난 1948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이 32주년을 맞던 날 LA시청 앞에서는 주류사회도 깜짝 놀랄만한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일제 치하에 있던 조국의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정부 건물에 정식으로 게양된 것이다.
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회 관계자를 포함한 1,000여명의 한인들은 다운타운 인근의 ‘승리의 광장’(Victory Square)에서 시청까지 현수막을 들고 시가 행진을 펼치면서 ‘한국은 독립국가다’ ‘일제에 대항해 30년을 싸웠다’ ‘끝까지 싸워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특히 이날 시가행진은 주 방위군과 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그랜드 마셜로 알버트 마셜 예비역 해군제독과 김호 ‘김 브라더스’ 공동대표가 선정되고 육군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하는가 하면 태극기가 시청 위에 휘날리는 감격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LA시는 조국의 독립을 갈구하는 한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이 날을 ‘희망의 날’(Day of Hope)로 정했다. 
켄 클라인 USC 동아시아 도서관장은 "태극기가 외국 정부 건물에 게양된 것은 1942년 8월29일 LA 시청이 처음"이라며 "당시 군복과 한복을 입고 시가행진의 대열에 참여한 한인들에게서 한국의 독립은 물론 제2의 조국인 미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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