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인 30일 오전 6시30분 LA 한인타운 올림픽 블러버드의 한남체인 앞 주차장.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시각임에도 한인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당일치기 무료 카지노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손에 도시락 등 간식거리를 하나씩 든 노인들은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일제히 올라타고 샌디에고 카운티에 위치한 카지노로 향했다. 80세 가량의 김모 할아버지는 버스에 오르기 전 "젊은이들이야 언제든지 가고 싶은데 갈 수 있지만 우리야 어디 그런가…맨날 방구석에 있느니 이렇게 카지노라도 가서 몇 시간 놀고 와야 답답함이 풀리지"라고 털어놨다.

무료 관광버스를 이용 카지노를 찾는 한인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동안 라스베가스까지 원정 가는 노인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LA 인근 인디언 보호구역에 라스베가스 스타일의 카지노들이 잇달아 오픈하면서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대부분이 김 할아버지처럼 심심풀이로 무료 카지노 여행을 이용한다고 말하지만 일부 노인들은 이를 통해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한인타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LA 근교 카지노 무료 여행이나 10달러 가량 하는 1박2일 라스베가스 코스를 운영하는 업체는 10여개. 이들 업체는 카지노로부터 손님들의 인원수나 게임에 사용한 총액에 따라 일정 커미션을 받는 대신 무료 관광을 내세우며 손님을 끌고 있다.

이에 따라 부담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용하는 한인 노인들 중 일부는 자제력을 잃고 한달 생활비로 받는 웰페어를 하루에 몽땅 잃는가 하면 카지노 도박을 위해 돈까지 빌렸다가 결국 빚 독촉에 시달리는 노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무료 버스를 이용 가끔 카지노를 찾는다는 황모(66)씨는 "얼마전 같은 버스에 탔던 한인 할아버지는 돈을 모두 잃은 뒤 LA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안내원에게 ‘언제 다시 올 수 있느냐’고 계속 묻는 것을 봤다"며 "저러다가 카지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언짢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한인 노인들 중에는 수천달러에서 1만달러까지 거침없이 쓰는 노인들도 있어 같은 노인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한인 노인들의 카지노 도박 문제가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이들을 위한 공간 부족 등에서 비롯됐다며 이에 대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작년에 은퇴했다는 김윤만(65)씨는 "전에는 몰랐는데 은퇴해보니 노인들이 할 일이나 갈 만한 곳이 정말 없다는 걸 알게됐다"며 "대안이 없어 무료 카지노 여행을 선택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카지노 여행 주선업체인 C&H여행사의 알렌 정 대표는 "카지노에 다니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건전히 시간을 보낼 공간과 프로그램이 마땅찮고 사회의 관심 밖에 있는 노인들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허상길 LA한인회 사무국장은 "카지노에 빠지는 노인들이 늘고 타운에 위치한 맥도널드 식당이 노인정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노인문제에 대책이 없는 한인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인사회 내 노인들 대상 교육을 담당하고 여가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복지센터 건립 등에 한인들이 관심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황성락 기자> srhwang@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