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기사 중에는 ‘시즌 기사’라는 게 있다. ‘어학연수 붐’ 기사가 그렇다. 여름방학이 되면 본국의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등지로 몰리는 현상과 관련해 언제부터인지 ‘어학연수 붐’은 ‘시즌 기사’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신문을 들여다보면 "초등생 어학연수 붐"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기사의 골자는 이렇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학연수 붐이 일고 있는데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어학연수가 유행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해외 어학연수, 또는 조기유학에 대해 한국 사회의 여론은 곱지 않았다. ‘위화감만 조성한다’ ‘놀러 가는 유학이다’ ‘영어교육에 별로 도움도 안 된다’ 등등 부정 일색의 시각이 적어도 ‘공개된 여론’의 흐름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올해 초등학생의 어학연수 붐을 다루는 국내 언론의 보도는 ‘그저 시즌이 됐으니 다룬다’는 인상이다. 예년 같은 신랄한 비판이나, 문제 지적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그러면 조기 교육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각이 달라져서 일까.
"요즘 아버지만 한국에 혼자 남아 돈을 벌고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 등지에 나가서 사는 가정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 아버지야 중년 나이에 미국에 가봤자 뾰족한 수도 없고 거기다가 한국서 벌이는 괜찮은 편이니까 혼자 남아 벌어서 나가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거죠."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한 방문객의 말이다.
’아버지 홀로’ 가정 급증 상태의 원인을 딱히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굳이 한다면 ‘실망감 때문’으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이 분의 말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는 진학문제로 생활이 지옥이다. 다행히 자녀가 일류 대학을 졸업한 부모도 별로 나아질 게 없다. 취직을 해도 장래가 보장되지 않아서다. 정작 사회에 나간 본인들의 실망이 더 크다. 학연이, 지연이 말하는 사회, 또 미국 물을 먹은 사람들만 으스대는 분위기에 실망을 하다가 결국은 일종의 환멸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이 분의 말씀을 조금 부연하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팽배한 것은 혐오감뿐이다. 우선 경제가 그렇다. 정치는 아예 혐오, 그 자체다. 진 구렁 속에서 민주니, 개혁이니, 통일이니 공허한 소리만 외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은 혐오감을 지나쳐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게 이런 식이니 자식이나 외국에 내보자 하는 마음에 너도나도 ‘나 홀로 아버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초등생 어학연수 위화감만 조성한다"- 이런 스타일의 기사는 이제 아주 계면쩍은 스토리가 된 세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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