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면에서 아시아의 빛나는 등불 가운데 하나" "미국은 한국 정부와 그 지도부에서 인권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고 있다" ….
미국이 27일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인권 개선 노력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내놓은 논평이다. 이 같은 논평은 미국무부가 하루 전 공개한 ‘2000년 세계인권보고서’와 관련된 것으로 마이클 팜리 미국무부 인권·노동담당차관보 직무대행이 워싱턴 외신기자 클럽에서 브리핑을 가지면서 한국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논평을 요구받고 내놓은 것들이다.
하기야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김 대통령이나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그래도 "우리가 최고"라 자임할 것 같은 현재의 한국 정부로서는 이 같은 칭찬조차 부족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인권 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정부는 이 같은 외교적 수사조차 들을 자격이 없다. 그 이전까지 정부야 말할 것도 없고…. 이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김대중 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며 지난 3년 동안 김대중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해 보여준 태도가 혹세무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말을 하는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근거다.
첫째,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본군 ‘위안부’ 및 징용 소송과 관련, 한국 정부의 태도는 비겁하다 못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인 징용 피해자들이 28일 캘리포니아주 법정에 또 다시 징용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자행된 각종 전쟁·반인류 범죄의 한국인 피해자들은 미국 법정을 통해서나마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일본의 눈치를 보기에만 급급하다. 한국이 과연 주권국가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주미 일본대사관을 앞세워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법에 접수시킨 공문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까지 당당히 부인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둘째, 한국전쟁 당시 한국 군경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 대통령·국방부·해군본부가 진상규명을 국제사회나 한국민에게 약속했으나 이후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무 결과가 없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지상명제라는 입장에서야 보수세력의 반발이 두려울 수밖에 없겠으나 정권유지만을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정권을 과연 누가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셋째, 광주사태 문제가 또 그렇다. 김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 문제 역시 시작도 끝도 없는 한국 현대사의 돌아보고 싶지 않은 한 토막으로 팽개쳐져 있다. 현 민주당의 전신인 평민당 부총재 출신으로 (한국국회) 광주특위 위원장을 지냈던 문동환 목사 자신이 "(YS정부가 협조하지 않아) 광주특위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으니) 제대로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밝혔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정부가 출범 4년째나 맞고 있음에도 20세기 후반 한국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광주사태 역시 피해자가 몇 명인지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등 가장 기초적인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은 채 어물쩍 넘겨지고 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과거사 타령이냐 할지 모르나 우리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깨끗한 과거 청산의 실패는 기회주의자의 양산을 낳고 기회주의자의 양산은 원칙의 무시를 또 다시 부추기는 악순환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오고 있다. 너무도 결과 지향적인 문제 해결 방식에 익숙해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했던 대가를 우리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치러야 할 것이다.
칸트의 말이었던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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