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별장에서 즐기던 휴가를 중단하고 베이루트로 급히 날아갔다. 레바논의 베이루트항 근처 질산암모늄 저장소가 폭발한 사고로 100명 이상이 숨지고 40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개인 일정을 제치고 현장을 방문해 국가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직접 베이루트를 찾은 국가 정상은 마크롱 대통령뿐이었다. 그가 레바논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400여 년 동안 오스만제국 지배하의 자치도시였던 레바논은 1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역설적이지만 1920년부터 23년간의 프랑스 식민 지배가 레바논이 근대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계절 내내 쾌적한 기후의 레바논은 ‘중동의 진주’ ‘지중해의 보석’ 등으로 불리며 중동의 대표 휴양지로 꼽혔다. 프랑스 통치 이후 프랑스어를 준공용어로 사용하는 데다 유럽 양식 건물도 많아 ‘중동의 파리’라는 애칭도 붙었다. 1960년대에는 중동의 경제 중심지로까지 부상했다.
■그러나 모자이크 국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종교가 섞인 복잡한 인구 구성이 비극의 씨앗이 됐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유대교 등 공식 인정을 받은 종파만 18개에 달한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후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넘어오고 1980년대 이후 헤즈볼라가 레바논을 장악하는 등 인접국 패권 다툼에 휩쓸리기 시작하면서 중동의 화약고로 전락했다.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 이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폭격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휴전 합의 조건에 레바논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했다. 하지만 미국은 폭격을 묵인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격퇴를 명분으로 레바논 추가 공격을 공언하고 있다. 지정학적 이슈가 얽혀 있는 우리나라도 이웃 국가들의 갈등에 휘말리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은 자강력과 외교력을 한층 더 강화할 때다.
<한영일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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