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커클랜드(Kirkland)로 데려다줘’라는 미국 단편소설을 읽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어렸을 때 나는 커클랜드(Kirkland)가 실제 지명이라고 믿곤 했다. 상상 속 커클랜드는 바다로 둘러싸인 어딘가 중간의 땅, 최소한 도시국가쯤 되는 곳이라고. 그곳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십 대 소녀인 주인공의 말이다.
브랜드 이름을 빌려 유토피아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작가의 재치에 웃음이 났다. 웃다가 문득, AI와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실존은 없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세계, AI에 접속하여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맘껏 퍼오곤 하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장난기가 발동해서 챗지피티를 열고 내 생각이 맞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네, 맞습니다! AI는 마치 거대한 도서관의 사서이자, 동시에 수만 권의 책을 순식간에 읽고 요약해 주는 편집자와 같아서 문의하시는 내용에 따라 정말 풍성한 정보를 쏟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장점을 좌르르 열거했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AI가 생성한 매끄러운 텍스트들이 넘쳐나는데, 사람의 글과 무엇이 다르냐고. 챗이 답하기를, AI 글은 유려하고 논리적이지만 그 문장에는 상처를 견딘 흔적,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전율이 없다. 학습된 언어 패턴에 의한 조립물일 뿐. 인간의 글쓰기가 가진 힘은 ‘몸과 경험’에서 나온다. 몸을 통과한 불안, 고통, 기쁨이 문장에 스며든다. 몸이 없는 AI는 아픔을 견디거나 기다림 속에서 자란 감각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AI는 사람의 경험을 흉내 낼 뿐이라는 것이다.
‘혼불’의 작가 故 최명희 선생의 생전 인터뷰가 퍼뜩 떠올랐다. “… 제 정신 속에 담겨 있는 느낌이나 이야기가 어깨를 타고 손등으로 내려와 만년필의 등으로 해서 촉으로 쏟아져 반짝반짝 광채를 내면서 종이에 스며드는 그 매 순간에 제 몸의 무늬가 원고지 위에 피어나는 것을 저는 정말 사랑하고 황홀감에 사로잡히곤 하죠.” 내 마음이 어지러울 때 꺼내 보는 말씀이다.
일 년 전에 AI 마라토너가 등장하여 하프 마라톤 코스를 2시간 40분대로 마친 사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로봇이 달리는 것은 경주일 뿐이라 평한다. 사람이 품은 서사가 없기 때문이라나. 거참, 대답 그럴듯하다. 서랍에서 오래된 티셔츠를 꺼냈다. 2009년 5월 25일 LA 마라톤 마크가 찍힌 티셔츠. 목둘레로 누런 얼룩이 남아 있다. 풀코스를 완주했던 그날의 땀 냄새와 근육통이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새겨진 것이다. 적어도 AI보다는 생생한 문장을 건져 올릴 테니 내가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동백나무 옆 자투리 땅에 아욱과 한련화 새순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자라난다. 직접 받아 둔 씨들을 새해 들어 투하하듯이 흙 속에 뿌렸다. 촘촘해서 숨 막히면 어쩌나 싶었는데 자유로운 영혼들 마냥 커간다. 지면에 담기는 나의 글 또한 그러하기를 바란다. 정형화되지 않은….
해가 쨍쨍한 거리를 걷다가 별안간 통증 같은 슬픔이 몰려오고, 비 오는 소리를 듣다가 충만감에 큰 숨을 내쉬는 그런 순간의 느낌, 너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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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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