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네’라고 말하면 우리는 대단히 고마워할 것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해도 좋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와 관련한 유럽의 선택을 요구하며 던진 말이다. 그는 그린란드를 병합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에 대히 필자가 접촉한 유럽의 한 지도자는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우리는 유럽의 우방국들을 다루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았다”며 “그는 우리를 경멸적으로 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위기가 해소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지도력은 기본적으로 거래에 바탕을 둔다. 그는 “누가 더 많은 지렛대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로 나오면 단순히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압도하기 위해 가능한 한 공개적으로 강력한 압박을 가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낸다. 그에게 외교란 쥐어짜기의 예술이다.
트럼프는 수 세대에 걸쳐 쌓아올린 미국의 막강한 힘을 재미삼아 사용한다. 그는 스위스에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스위스 대통령이 자신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관세율을 천정부지로 인상했다. 그는 스위스 측이 다급하게 그를 찾아와 관세율을 낮춰달라고 읍소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린다. 이건 전략이 아니라 힘 자랑이다.
지난해 마르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농담삼아 트럼프를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싸움에 개입하는 ‘아빠’에 비유했다. 그 이후 트럼프는 다보스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뤼테의 말을 전하며 흐뭇해했다. 그는 진정성 없는 칭찬조차 자신의 막강한 힘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그의 힘을 의식해 억지로 칭송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대통령을 뿌듯하게 만든다.
유럽인들은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트럼프는 약하게 보이는 상대에겐 늘 이와 동일한 스타일로 압박한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는 침략국인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눈을 치켜뜬다. 우크라이나가 종속적인 지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국가에 대해서도 자신이 싫어하는 정책을 끄집어내 사정없이 두드려팬다. 그러나 중국에겐 종종 이상하리만큼 경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베이징이 미국에 큰 손해를 줄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걸프지역의 왕조국가들에게도 호감을 보인다. 그들이 엄청난 액수의 현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그가 존중하는 힘의 한 가지 형태다.
이는 현대에 미국이 지도력을 행사해온 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은 사반세기 가깝게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지도자들은 패권이란 강압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손에 쥘 수 없으며, 정당성을 인정받고 상대를 안심시켜 자발적인 협력을 끌어내야만 유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들은 힘이란 절제할 때 더욱 지속가능해지고, 동맹국들이 두려움보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는 기본적인 진실을 파악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을 떠올려보라. 당시 미국은 연합국에 없어서는 안될 병기창이었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영국과 소련은 전쟁에서 일찌감치 패배했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힘의 논리로 볼 때 ‘을’에 해당하는 처칠과 스탈린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휠체어에 의존하는 중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탄원자인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만나기 위해 여러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카사블랑카, 테헤란, 얄타 등지로 날아갔다. 물리적인 형태를 빌어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과시한 셈이다.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는 실질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보다 더 장황하게 2차 대전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지켜본 조지 H.W. 부시 대통령을 생각해보라.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고, 부시는 이에 대해 얼마든지 공치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베를린 장벽 위에서 춤추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분적인 이유는 자유를 찾은 동유럽인들에게서 영광의 순간을 훔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장벽을 허물도록 허용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25년동안 인도가 수치상으로 대단히 빈곤한 국가였을 때조차 미국은 인도를 중요국가로 대우했다. 미국이 보인 존경심은 자선이 아니라 전략적 협력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는 투자였다. 트럼프는 항상 눈 앞의 손익계산서만 본다. 인도의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작기 때문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관세율을 책정해 얼마든지 압박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사고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강압적 협상의 기술이다. 손에 쥔 지렛대를 이용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가장 높은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이로 인해 그들이 입은 상처를 자신이 거둔 성공의 증거로 내세운다. 일회성 부동산 거래에선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세계를 상대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내구력을 지닌 변변한 기업조차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여러 지역을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했다. 여기에는 서유럽, 노르웨이, 핀란드, 남중국해 해상로, 페르시안 걸프, 일본 인근 해역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전략적 중요성이 물리적 합병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워싱턴은 연합, 접근권 협정과 전진배치 등을 통해 안보를 확보해왔다. 그린란드도 이러한 전통에 부합한다. 미국은 이미 이곳에 한 개의 기지를 두고 있고, 강압이 아닌 협력을 통해 군사력을 쉽게 확대할 수 있다.
트럼프가 ‘얼음 조각’이라고 부른 그린란드를 손에 넣건 못넣건, 그는 헤드라인보다 오래 남을 무엇인가를 이미 해냈다.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앞으로도 동맹국들은 미국의 현실적인 힘 때문에 워싱턴에 협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미국에 대한 신뢰를 줄이고, 위험을 덜기 위한 대비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보다 모두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강제로 끌고가는 세상에 대비해 조용히 준비를 해나갈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럽의 지도자는 트럼프가 자신만의 전용물이라 생각하는 냉철한 어투로 선언했다: “우리는 잊지않고 기억할 것이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