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오색이 영롱한 작은 전구가 달린 전깃줄을 두르고 아이도 어른도 각자 좋아하는 색색의 구슬을 매어 단다. 하얀 눈도 걸고 지팡이 사탕과 온갖 모양의 인형, 빨간 양말과 앙증맞은 카드까지 예쁜 것은 모두 달아맨다. 맨 꼭대기에 빛나는 큼지막한 별을 달고 트리 장식이 끝났다. 인조로 만든 트리가 반짝이는 소품을 달고 우아하게 거실을 밝힌다.
내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난 건 열 살 무렵이다. 내 고향은 읍내에서 십 리나 들어간 하루에 두 번 버스가 오가는 시골이었다. 읍내 교회에 다니던 부모님과 친척들이 마을에 예배당을 지었다. 반짝이는 양철 종탑이 교회임을 알려주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어느 성탄절, 전도사님이 뒷산에서 가져온 소나무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색색의 반짝이 종이로 별과 인형을 오려 달고 과자나 사탕도 매달고 집에서 가져온 목화솜으로 눈 모양도 냈다. 호롱불에 색종이 장식이 반짝거렸다.
1419년 독일에서 전나무를 장식하며 유래되었다는 최초의 트리나, 숲속 전나무를 촛불로 장식했다는 마틴 루터의 트리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내가 본 첫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68년 12월 7일에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산에서 베어 온 적당한 소나무에 작은 전구가 달린 전깃줄을 휘감아 두르고 색색의 에나멜을 입힌 구슬을 달았다. 오려 만든 인형과 별, 사탕도 달아매고 꼭대기에 큰 별을 단 후, 전기 버튼을 눌렀다.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함성이 터졌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나무였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히라고 하늘에서 전기를 보낸 것 같았다.
기원전 600년경 정전기 현상의 발견으로 전기의 역사는 시작됐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으로 비로소 전기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온 건 1887년 고종 때였다. 이후, 내가 사는 시골까지 전기가 오는데 80년의 세월이 걸렸다. 면 소재지인 우리 동네에서 오리, 십 리 떨어진 동네에 전기가 들어가기까진 이후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전기가 왔어도 TV는 몇 동네에 한두 대 정도 있었으니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했을 리 없었다. 카드에서 본 트리 그림이 전부였다. 그 트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고 불을 밝혔다는 건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없이 자랑하고 다녔다. 어떤 아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기 위해 예배당에 오기도 했다.
트리에 장식을 매어 달고 있는 손주에게 할머니는 이런 장식을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믿을는지 모르겠다. 동방박사 인형, 흰 눈, 크고 작은 별을 각색의 반짝이 종이로 만들어 달았다고 하면 동화 얘기를 하는 줄 알겠지? 세상은 변하고 저 애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어떤 신기한 문물이 사람을 놀라게 할는지 알 수 없다.
말없이 서 있는 트리를 본다. 아무리 화려한 장식을 했어도 60년대, 전깃불도 없던 시절의 그 소박한 트리보다 아름다워 보이지도 가슴 설레는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고사리손을 호호 불며 트리를 만들던 그때, 가위질하는 손마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그 트리에는 예수님의 오심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순수(純粹)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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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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