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fted and Talented Education, 줄여서 GATE라고 부르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대체적으로 3학년부터 6학년 학생 중 선발하여 좀 더 재능을 키울 수 있게끔 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아이가 게이트로 뽑히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가 종종 있다. 교육학이나 심리학 등 관련 전공 박사님들이 학교에 방문해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지에 대해 조언한다.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자유롭게 하라는 것과 예능 교육을 시키라는 거였다. 창의력 넘치길 원한다면 상상력을 막지 말고 음악이나 미술 교육을 시키라는 거였다. 이는 심신의 안정을 위한, 도덕적이고 정서적으로도 한 단계 위의 리더가 되기 위한 소양이기도 하고, 또 학업 등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성 교육을 강조한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마치 어려운 문제라도 만난 듯이 일단 거부감 느끼는 분들도 있고, 혹은 있는 척, 아는 척, 그런 과시욕으로 허세처럼 듣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두고 찾아본다면 자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좋은 책과 같은 음악회가 많다.
최근 만난 이츠하크 펄먼의 연주회는 디즈니홀의 무대를 아늑한 거실로 변신시켰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깔린 양탄자를 향해 펄먼은 전동 휠체어로 경쾌하고 빠르게 등장했다. 언제부턴가 이 전동 휠체어를 타기 시작하면서 펄먼은 보기에도 신날만큼 무대 등장을 즐기는 듯하다.
펄먼은 마치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 하듯이 인생 스토리를 영상과 더불어 들려주었다. 사실 그는, 아마도 팬데믹 때부터 SNS를 통해서 이미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나 역시 그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바쁜 연주 생활에서도 자주 영상을 통해 그의 위트 넘치는 언변으로 웃음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난 그 중에서도, 독주회 전날 디즈니홀 바로 옆에 있는 브로드 뮤지엄에서 그 유명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원색의 풍선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의 펄먼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며칠 전 나도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기에 더욱 반가웠고, 무대 저 너머 다가가기 힘든 거장이 아니라 이웃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그의 연주를 좋아했는데, 펄먼의 연주를 들으면 어떠한 슬픈 곡마저도 결국 미소 짓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리 애절하고 슬픈 선율도, 심지어 눈물 흘리며 듣고도, 그의 연주의 마지막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어쩌면 그의 인생철학이 음 하나하나에 스며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쾌활한 사람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스마트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로 갑자기 두 다리로 뛰지 못하게 되었을 때, 물론 실망이 컸겠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얼마 전 하려다가 포기했던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 그의 인생이 이미 반 이상 성공한 때라고 믿는다.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는 그 마음가짐이 그의 연주에서 느껴진다.
그는 이야기도 참 재밌게 한다.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절대로 유치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그가 바이올리니스트로, 거장으로, 그리고 80세 생일도 무대에서 신나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에너지는 바로 그 절제된 긍정의 힘이라고 본다.
내가 펄먼을 존경하는 이유 중 또 하나, 아마도 오래전 ‘세서미 스트릿’을 봤을 때였다. 그리고 이번 연주회에서도 그때의 영상을 보여줘서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또 감동 받았다. 무려 40여 년 전의 영상이다.
그 영상에서 어린 소녀가 깡총깡총 재빠르게 계단 위에 올라가 앉는다. 그러나 아직 무척 젊은 펄먼은 다리 보조기와 목발에 의지한 채 힘겹게 한 칸 한 칸 올라간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 힘겨워 보이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 어린 소녀에게, “가끔은 쉽지 않지만 한 칸씩 올라가면 결국 도착할 수 있단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디즈니홀 무대에서 펄먼은 연주보다는 주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연주할 때는 그의 오랜 반주자인 스리랑카인 로한 드 실바와 심지어 페이지 터너까지, 무대에는 세 명의 할아버지들만 올랐지만, 그 어떤 아이돌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보다 감동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녀가 재능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이런 음악회야 말로 가장 좋은 수업이 될 거다.
펄먼 할아버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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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 / YASMA7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