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바쁘게, 아니 그보다도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알래스카에서 푸틴을 만났다. 국제사법 재판소가 전범(war crime)으로 수배를 내렸다. 그런 그를 레드 카펫을 깔고 국빈으로 아주 융숭히 대접하면서. 그 리얼리티 쇼가 채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워싱턴으로 장소를 옮겨 화려한 국제 갈라 쇼를 펼쳤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등 유럽의 주요국 지도자들이 일제히 워싱턴을 방문. 마치 황제를 알현 하듯이 자리를 함께 했던 것.
트럼프가 지난 한 주간 벌인 국제 외교 쇼다. 이 행사는 한 목표에 집중돼 있었다. 우크라이나 평화다. 동시에 다른 것도 노리고 있었다. 트럼프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평화의 인물이란 점을 은연중 각인시키려는 거다.
목표는 어느 정도라도 달성됐나.
‘러시아인들은 평화회담을 비웃고 있다’, ‘왜 우크라이나가 싸우는지 트럼프는 잊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에게 Nyet(노)이라고 말할 때다’…. 주요 언론들의 반응이다. 한 마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는 더 멀어져 보인다는 이야기다.
이런 반응들을 뒤로 하고 트럼프는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스타일의 제안을 또 다시 내놓았다. 푸틴과 젤렌스키에게 두 주의 시한을 주었다. 그 안에 평화 안을 내놓지 않을 때 모종의 결심을 할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의지’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붙인 건 다름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평화중재와 관련해 트럼프의 입장, 의지, 각오 이런 것들이 변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부터 석유 등 전략물자를 수입하는 나라들에게 대대적 2차 제재를 가할 것이다.’ 8월초 무렵 트럼프가 던진 경고다. 푸틴과의 알래스카 대좌에서는 정착 ‘제재’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았다. 공수표가 된 것이다.
‘알래스카에서 워싱턴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펼쳐진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평화 외교 행사, 그 일련의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은 트럼프의 변덕이다.’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전쟁 종식 플랜이 없다. 그런 트럼프의 입장은 하루가 멀다고 달라진다. 하루는 휴전을 원한다고 했다가 다음 날에는 영구적 평화를 말하고 또 어느 날은 우크라이나전쟁 휴전중재에서 손을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런 트럼프의 외교 서커스는 러시아로 하여금 전쟁을 중단시키는 데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 더나가 전쟁능력 강화를 저해시키고 있다. 방향성을 상실한 트럼프의 외교는 요컨대 푸틴 러시아에게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다.
‘보다 궁극적인 문제는 이 같은 외교는 미국의 위상 저하에 따른 파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계속되는 지적이다.
국제관계에서 질서 정연한 조직적 방식, 그리고 매너는 상당히 중요하다. 트럼프의 외교진행 방식은 무질서한데다가 너무 혼란스럽다. 그의 연설은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 그런데다가 정책변화가 너무 잦아 외국 지도자들은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가 없으면 설득이 안 되다. 진정한 협력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부재 상황에서는 동맹도 그 정당성을 상실한다. 그러니까 일관성이 있고 절제돼 있고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미국 파워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게 포린 어페어스의 지적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상실했을 때 오직 하드 파워(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에만 의존하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의 외교를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약소국 지도자들을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경향이다.’-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그 비근한 예가 푸틴과의 알래스카 회담과 비슷한 시점에 이루어진 스위스 연방대통령 방미 시 워싱턴이 보인 ‘개무시’에 가까운 홀대다.
관세문제로 워싱턴을 찾았다. 그 스위스 대통령을 트럼프는 대면조차 안했다. 방미 전 사전 통화내용이 거슬렸던 탓인가. 결국 국무장관이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는 39%의 관세폭탄을 안겼다. 푸틴에게는 레드 카펫을 깔고 대접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뭐 놀랄 일도 아니다. 스위스뿐이 아니다. 약소국 지도자가 워싱턴을 방문하면 마냥 무시된다. 그게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서 관례가 되다시피 해서다.
‘America First’가 민주주의 가치도 무시한 강대국 중심의 패권주의 외교로 변질되고 있다고 할까. 그에 따른 불협화음이 인도-태평양지역에서도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 이어지는 포린 폴리시의 경고다.
‘규칙에 따른 민주적 국제질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지역의 4개국들이다. 그 연장에서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푸틴 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고 있는 다른 아시아국들과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만 혼선이 빚어졌다. 트럼프의 미국은 ‘America First’를 외치며 민주주의 동맹국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러시아에 연신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로 인도-태평양지역의 미국의 동맹전선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 ‘America First’의 트럼프가 이재명을 만난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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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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