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역 안 가리는 트럼프식 거래
▶ 엔비디아 H20·AMD MI308
▶ 중 수출액 15% 정부에 내기로
▶ 사퇴 압박 받는 인텔 탄 CEO
▶ 백악관 찾아 투자약속 등 관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랑하는 ‘거래의 기술’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뻗어나가고 있다. 고율 관세를 무기로 주요국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온 트럼프 행정부가 이제는 개별 기업 비즈니스에 직접 개입해 수익을 확보하고 경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포착된다. 하지만 첨단기술 수출 규제조차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복수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에 대한 수출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해당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경우 중국 내 H20 칩 판매 수익의 15%를, AMD는 MI308 칩 수익의 15%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 직후부터 대(對)중국 공세를 강화하며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수출통제를 강화해왔다. 이에 올 4월 엔비디아의 중국용 저사양 칩 H20과 AMD의 MI308을 수출 금지 품목에 올렸다. 6월 미중 2차 무역 협상을 계기로 규제 완화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미 당국이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최근까지 실제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6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백악관을 찾아 매출의 일부를 정부에 지급하기로 했고 이후 당국이 수출 허가를 내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수익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결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수익 규모도 제한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번스타인에 따르면 올해 엔비디아의 H20과 AMD MI308의 대중 매출 규모는 각각 150억 달러, 8억 달러로 예상된다. 여기에 15%를 적용하면 미 정부의 몫은 약 20억 달러 내외 수준이다. 미 정부의 연간 세수(4조~5조 달러)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구나 미국 정부가 개별 기업의 수출 허가와 맞바꿔 매출 일부를 받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통신은 “특정 제품에 사실상의 ‘수출세’를 부과하는 방식은 현대 기업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정부가 사실상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 파트너가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합의는 거래를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거두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고율 관세 부과를 지렛대 삼아 주요국에 대미 투자를 압박해왔다. 실제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대미 관세율을 낮추는 조건으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피하려는 기업에 국내 투자 등 조치를 요구해왔으며 이번 합의 역시 같은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개별 기업 거래에 개입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이어왔다. 단적인 예로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과정에서는 미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부여했다. 황금주는 한 주만 보유해도 중요 경영 사안에 거부권을 갖는 주식을 말하는데 US스틸 매각을 반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NYT는 “이번 엔비디아의 15% 수익 제공 합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주의적 행태와 맥을 같이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행보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립부 탄 인텔 CEO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을 찾는다. 자신에게 제기된 중국 관련 의혹을 해명하는 한편 투자 약속 등 정부 협력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계 미국인 탄 CEO는 인텔 합류 전 반도체 설계 기업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스를 이끌었는데 이 회사가 과거 중국 국방 관련 대학에 제품을 판매한 혐의를 받으며 1억 4000만 달러의 벌금을 낸 전력이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개입주의 행보를 두고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첨단기술 수출 규제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
서울경제=이완기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