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4할 타자’ 윌리엄스, 한국전쟁서 전투기 몰고 39번 출격
▶ 콜먼은 MLB에서 유일한 ‘2차 대전-한국전쟁’ 전투 임무 수행

국가보훈부에서 2023년 7월 전쟁영웅으로 선정한 테드 윌리엄스 [국가보훈부 제공]
올해로 발발 75주년을 맞이한 한국전쟁은 미국의 많은 청년을 전장으로 불러들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던 스타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선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다.
MLB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윌리엄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해병대 소속으로 전투기 비행훈련 교관으로 복무했고 1952년에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F9F 팬서 전투기를 몰고 39차례 출격 임무를 수행했고, 동료 조종사 가운데는 훗날 우주비행사가 되는 존 글렌도 있었다.
방망이 대신 조종간을 잡은 그는 더는 ‘4할 타자’가 아니었다.
대신 목숨을 걸고 비행 작전을 수행했고, 평양에 폭격하러 갔다가 대공포에 맞아 격추될 뻔할 정도로 사선을 넘나들었다.
우리나라 국가보훈부는 2023년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윌리엄스 미국 해병대 대위를 선정해 자유를 위해 싸웠던 그의 공을 기렸다.
복무 때문에 야구선수로서 경력에는 크게 손해를 봤지만, 생전 윌리엄스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다.
윌리엄스와 함께 한국전쟁 전장을 누빈 또 다른 인물로 뉴욕 양키스 내야수 출신 제리 콜먼이 있다.
MLB 역사상 유일하게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모두 전투 임무를 수행했던 그는 두 전쟁을 통틀어 120회가 넘는 전투 비행을 마쳤다.
1950년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될 정도로 재능 넘치는 선수였던 그는 한국전쟁에 다녀온 뒤에는 야구선수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은퇴 후에는 해설자로 변신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콜먼과 함께 양키스에서 뛰었던 내야수 바비 브라운은 한국전쟁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1952년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인천항에 도착했던 날이 월드시리즈 1차전이었다는 브라운은 “나는 한국에 있었고, 아주 슬픈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브라운 역시 전장에 다녀온 뒤 선수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고, 대신 심장 전문의로 일하며 MLB 사무국 주요 직을 거쳤다.
밥 네이버스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MLB 선수다.
1952년 폭격 임무 중 피격된 그는 연락이 두절됐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 공식으로 전사 처리됐다.
MLB 인물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네이버스 인물 소개에 그의 사망일은 1952년 8월 8일, 장소는 북한(North Korea)으로 남아 있다.
이들 외에도 MLB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전설적인 외야수 윌리 메이스와 투수 화이티 포드는 한국전쟁 기간에 군에서 복무한 선수다.
다만 메이스와 포드는 한국에 파병되는 대신, 미국 본토에서 훈련받았다.
메이스와 포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MLB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미스터 컵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유격수 어니 뱅크스는 니그로리그에서 뛰던 1951년 입대해 독일에서 복무한 뒤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대해 MLB 무대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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