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한 것 대한 자율성의 욕구가 있다. 자신의 선호도나 원칙, 행동을 직접 제어한다고 느끼려는 욕구이다.
따라서 자신이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조종되거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율성에 대한 의식이 위협받게 되면서 잠재의식에서라도 거부하거나 반항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의욕을 북돋우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부모가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본거야.’라고 말해주는 아이는 부모가 ‘이번 시험에 A를 받으면 5달러를 줄게.’라고 말하는 아이보다 장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더욱 높은 동기를 부여하고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요차이 벤틀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 중에서)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율적 이타심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동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설사 인간에게서 이타적 성향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적 행동으로 발생하는 ‘희생’을 감수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상호협력’, ‘상호호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바른 도덕심에 따른 ’자율성의 욕구’가 발동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신도 벅찬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스웨덴 혈액협회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헌혈을 하는 여성에게 일정액의 물질적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더니 헌혈자가 급감했다. 헌혈협회는 방침을 바꿨다. 헌혈을 통해 받은 보상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도록 했다. 그러자 자발적 헌혈 여성의 숫자가 급증했다.
인간은 진화론자가 말하듯이 이기적 유전자로 똘똘 뭉쳐진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이웃의 행복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이타심과 선한 도덕적 자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토에 갑자기 블레셋의 구척장수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사시나무처럼 두려워 떨었다. 이스라엘 쪽에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방적 전쟁터에 갑자기 소년 다윗이 나타났다. 소년 다윗의 손에는 물매와 작은 돌 다섯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과 일대 일로 격돌했다. 이스라엘의 사령관 사울은 이제 구경꾼이 되어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고 있다. 강렬한 책임의식으로 불타는 다윗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시고 기적으로 도우셨다. 작은 소년이 장수를 이겼다.
책임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율성의 욕구도 강하다. 자율적 이타심이 개입되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쁨과 행복감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리더는 위기와 혼란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자신의 보신을 위하여 피할 자리를 찾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책임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신을 어떤 상황에 연결시키지 않고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책임의 믿음을 가지고 절대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힘을 얻는다.
자율성의 욕구로 충만한 다윗은 말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이다.” 당신은 자율성의 욕구로 충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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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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