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세조가 잠저시절 유명 관상가에게 물었다는 질문이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함의가 내포된 절묘한 말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이런 질문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적은 없는가. 아마 우리 같은 필부(匹夫)들은 그런 질문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움을 갖겠지만 목에 힘이 다소라도 들어간 위인들은 농 반 진 반으로 자기의 거울 앞에서 던져볼 물음일 터이다.
물론 질문은 자유다. 그러나 대답은 그리 쉽지도 않고 녹록하지도 않았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명멸했던 수많은 왕들만 모르고 있었다. 비록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결국은 그 자리가 자기의 자리가 아니었음을 끝내 모른 채 사라진 왕들이 대부분이었다. 왕이란 이 시대의 모든 지도자들을 포함한 명칭이 될 수도 있다.
우매한 민초들은 왕을 원한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뭔가 허전해서, 자신이 없어서, 사사기 시대의 백성들처럼 자신을 옥죌 왕을 원하는 것이다.
연못에 개구리들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 작은 연못에는 개구리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어 개구리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연못의 왕은 다른 종족이 아닌 늙은 개구리였다. 왕은 아무 간섭 없이 그저 연못 한 귀퉁이에서 졸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이쪽 연못 개구리들은 자신들도 왕을 세우자고 의견의 일치를 본 후 “우리는 강력한 왕을 세우자. 졸고 있는 왕은 필요 없다.” 라고 합의했다.
마침내 그들은 가끔 자신들의 연못에 들어왔다 사라지는 뱀에게 시선을 돌렸다. 뱀은 우선 풍채가 자신들과 달리 날씬했고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가. 그리고 무엇보다 눈초리가 대단했다.
찢어진 두 눈은 살기가 번득여 공포를 자아내지만 그래도 외침(外侵)을 막아줄 힘의 상징과도 같아 애써 믿기로 했다. 드디어 뱀이 왕으로 즉위했고 그날부터 연못은 개구리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뱀은 왕이 될 상이 아니었으나 순진하기 짝이 없는 개구리의 우매는 뱀의 선동에 속아 자기 자신을 공양 제물로 바치는 운명이 되었다는 우화다.
참으로 지도자를 잘 만난다는 것은 천운이며 천복이며 은혜다. 없는 듯 있는 지도자, 왕이 되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자행하는 인간이 아닌, 그래서 거듭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오른 그런 인간을 기다리지만 당치 않은 기대일 뿐이다.
한때는 철인(哲人)이 왕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도 있었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이론이었다. 농사 짓던 사람도, 장군도, 정치가 직업이었던 인간도, 장사꾼도, 여자도, 그러나 이렇듯 명멸했던 별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빛을 뿜어냈던가.
왕이 될 상은 미련해야 한다. 덜 똑똑해야 한다. 이 시대는 자기 자랑의 시대라지만 일단 자랑의 틈이 보이면 왕을 체념해야 한다. 여기서의 왕은 모든 지도자와 지도자연(指導者然)하는 인간군(群)을 다 포함한다. 자랑의 틈은 무엇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세한 틈으로 자랑이 스멀스멀 연탄가스처럼 새어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교훈을 기억하는가. “어린애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뜻으로 보면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른인 척하는 인간들이다. 스스로 왕의 상을 가졌다 착각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인을 칭함이다.
대변약눌(大辯若訥)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웅변은 더듬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눌변이 미끈한 말을 누른다. 물론 그냥 눌변이 아니다. 눌변에 진심을 담고 정성껏 표현하려 애쓴다면 호령하는 말솜씨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상이 너무 좋다고 과신한 나머지 왕의 자리를 탐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뒤안길로 사라지는 역사의 실패자가 될 수도 있다. 완벽하다고 스스로 믿다가 결국은 허황된 거짓말로 자기의 탑을 쌓는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지도자가 되려는 자는 상(相)보다 세치 혀의 간교함이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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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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