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엄정행 선생 등과 함께70-80년도 한국 성악계를 이끌던 고(故) 신영조 선생의 1주기 추모 음악회가 다음 달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신영조 선생은 지난해 4월 뇌경색으로 작고했다. 테너 신영조는 한때 한국의 3대 테너(박인수, 엄정행, 신영조)로 불리우던 한국 성악계의 간판 스타였다. 신영조 선생을 처음알게 된 계기는 클래식 방송을 듣던 중 누군가 가곡을 신청하면서 꼭 신영조의 음성으로 들려달라는 멘트 때문이었다. 그 당시 방송국에서 그의 의향대로 신영조 선생의 가곡을 들려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또다른 방송에서 같은 멘트를 다시 들었을 때 ‘아, 신영조라는 사람이 매니아들을 많이 거느린 노래 도사인가 보구나’ 생각했다.
그 후로 방송이 나올 때 마다 신영조 선생의 노래를 주목했고 음악감상실 등에서도 혹시 신영조 선생의 노래가 나오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곤 했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가스라이딩을 당한 셈인데 당시 신영조 선생이 정말 노래를 잘 했는지는 솔직히 잘 알 수 없었지만 나 자신도 덩달아 신영조를 좋아하게됐다는 점은 정말 알다가도모를 일이었다. 사실 신영조의 목소리는 가곡을 부르는데 있어서 가사 전달이 조금 어눌한 일면이 있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보니 발음이 조금 서양화되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엄정행 선생 등의 가곡을 듣다가 신영조의 노래를 들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발성만큼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최고였다. 아마도 슈투트가르트 등 외국 오페라 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경력 때문이었겠지만 신영조 선생이 부르는 노래 중 가곡이든 오페라든 그 풍부한 울림은 당대 따라올 자가 없었다. 약간 파바로티를 닮았다고나할까 대단한 미성에 부드럽게 뻗어나는 성량은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곤 했었다. 지금도 한국의 테너 가수 중 유일하게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도 신영조 선생 한사람 뿐이다.
신영조 선생의 또다른 매력은 그분이 특별히 외모가 너무 투박하게 생겼다는 점이다.(고인에겐 조금 죄송한 표현이지만) 엄정행 선생 등이 미끈한 외모로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다닌 경우라면 신영조 선생은 노래 하나로 승부했던 진정한 노래쟁이였다. 아니 어쩌면 신영조 선생이 외모에서 오히려 투박했기 때문에 더욱 순수해 보였고 그의 노래가 더욱 진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지만 도넘는 끼가 절제된 그의 노래는 순박하고도 강렬했다.
테너 신영조는 70년도 부터 90년도 까지 한국의 가곡 시대의 황금기를 이끌던 일등공신이었다. 독창회가 열릴 때면 늘 2부는 한국 가곡만으로 채웠다고 한다. 박판길의 '산노을'을 잘 불렀고 TV 등에 출연해 '진달래꽃', '내마음', '기다리는 마음', '그리운 금강산' 등을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렸다. 살아생전 늘 대한민국에 가곡 콩쿠르가 없다면서 ‘세계적인 가곡 콩쿠르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영조 선생을 추억하며 평소에 좋아하는 가곡 ‘고향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어느 덧 내 마음 속에 가을이 선뜻 다가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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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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