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속에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결국 1년도 못 채우고 경질됐다.

지난해 2월 27일(이하 한국시간)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을 때부터 대표팀은 불안한 시선을 받았다.

독일 출신으로 현역 시절 세계적인 스타 골잡이였던 클린스만 감독은 지도자로 변신한 뒤로는 호평보다는 혹평을 훨씬 많이 받았다.

2004∼2006년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아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하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이게 그의 지도자 경력의 정점이었다.

2011년 미국 대표팀을 맡아 2013년 북중미 골드컵 우승,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 등 성과를 냈으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부진으로 경질됐다.

프로 무대에서의 경력은 딱히 내세울 것도 없었다.

2008년 7월 독일의 '절대 1강' 바이에른 뮌헨 지휘봉을 잡았으나 부진으로 9개월 만에 떠나야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탈락, 정규리그 2위 등 뮌헨으로서는 굴욕적이라고 할 만한 성적을 냈다.

전술적으로 무능하고 지도력, 경기 중 대응 능력도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던 클린스만 감독은 2019년 11월 독일 헤르타 베를린을 맡고서 단 10주 만에 개인 소셜 미디어로 사임 발표를 하고 '야반도주'를 하는 기행을 벌이면서 '무책임하다'는 평가까지 듣게 됐다.

클린스만 감독이 어떤 지도자인지를 아는 이들은 우려했다. 그런데도 축구협회는 이런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전술적으로 무능력하다는 비판에 반박했다. 무책임하다는 지적에는 "인생은 늘 배움의 과정이다. 베를린에서 그렇게 한 것은 실수였다고 생각한다"며 더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표팀은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하고서 5경기(3무 2패) 무승을 기록했다. 축구협회가 1992년 대표팀 전임 감독제를 도입한 이후 취임 후 5경기까지 승리하지 못한 사령탑은 클린스만 감독이 최초다.

지난해 하반기 평가전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6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베트남, 중국, 싱가포르 등 약체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클린스만호는 64년 만의 우승을 이루겠다며 야심 차게 도전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졸전을 거듭하다가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2로 충격패하고 탈락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적으로 무능력하다는 비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시안컵에서 스스로 '증명'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어서 선수 심리 장악에 능하다는 게 클린스만 감독이 그나마 받던 긍정적인 평가였는데, 한국 대표팀을 지휘하면서는 이마저도 무색해졌다.

클린스만호의 '황태자'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요르단전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한, 이른바 '탁구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손흥민은 후배 이강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격분해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은 주먹질로 대응했다. 선수들이 이를 뜯어말리는 혼란 속에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무책임하다는 세간의 평가도 틀린 게 아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재임 기간 대부분을 한국이 아닌 거주지인 미국에서 보내 '재택근무' 논란을 일으켰다.

아시안컵 뒤에도 귀국 이틀 만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15일 열린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그는 아시안컵 부진의 이유로 '선수 간 불화'를 댔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선수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축구협회는 결국 16일 임원 회의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키로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하고서 1년도 못 채우고 쫓겨났다.

우려 속에 사령탑에 오른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 실망만 안기고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과 한국의 첫 인연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였다.

한국은 이 대회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에 2-3으로 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차원이 다른 결정력으로 전반전에만 2골을 폭발하며 한국에 패배를 안겼다.

결국 한국과 클린스만 감독의 인연은 악연으로 시작해 악연으로 끝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