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경고 없이 총격, 10대들 희생
▶ 30개주서 집 밖까지 정당방위 허용…“총기 사용 빈도·범위 확장 부작용”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집을 잘못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주인에게 총을 맞은 16세 소년 랠프 얄. [로이터]
13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州) 캔자스시티. 친구 집에서 놀고 있는 쌍둥이 동생을 데려오라는 부모의 심부름으로 이 동네를 찾았던 16세 흑인 소년 랠프 얄은 느닷없이 총을 맞았다. 집 주소를 착각해 다른 집 초인종을 잘못 눌렀는데 집에 있던 84세 백인 앤드루 레스터가 총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얄은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선 “어떤 아이도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는 이유로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아서는 안 된다”(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는 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뉴욕주 헤브런에서 친구 집으로 향하다 길을 잃고 헤매던 케일린 길리스(20)가 사유지 도로에 잘못 진입했다 집주인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총격범 케빈 모아한(65)은 차를 돌려 나가는 길리스 일행에게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총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피살자 여성과 집주인은 모두 백인이었다.
18일 텍사스주에서는 치어리딩 훈련을 마치고 슈퍼마켓 주차장에 세워 둔 자기 차량을 착각해 남의 차 문을 열려던 10대 일행이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19일에도 부모와 함께 농구공을 갖고 놀던 6세 소녀와 부모가 총에 맞았다. 농구공이 이웃집 마당에 흘러들어간 일이 발단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총격 사건이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열흘 사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은 ‘정당방위’ 원칙과 총기 규제 범위를 두고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차 문을 잘못 열었다고 총까지 맞아야 하느냐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특히 미주리와 뉴욕주 사건은 개인의 자력구제를 위한 정당방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미국 20여 개주에서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 적용되고 있다. 중세 시대부터 유래하는 캐슬 독트린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성, 보호구역이 있는 만큼 집을 침범하려 하는 사람에게는 정당방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또 정당방위 범위를 집 바깥으로 확대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법도 미국에서 30개주가 채택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물러나지 말라”는 뜻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집 바깥에서도 총기 등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정당한 방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NYT는 “이 법은 폭력을 증가시키고 경찰력은 약화시킨다고 반대론자들은 이야기한다”며 “이 법이 전체적인 총기 살인 비율을 증대시킨다는 합리적 증거도 있다”라고 전했다.
미국 비영리재단 ‘총기 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미국 내 총기 폭력 관련 사망자는 2만200명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22일 기준 1만2,933명이 총기로 인해 숨졌다. 총기 자살(7,392명)을 제외한 총기 살인,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만 5,541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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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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