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 작은 오타와 같은 사소한 실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 공들였던 작업물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큰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컴퓨터란 녀석은 어찌나 신박하고 똑똑한지 인간의 이 엄청난 실수를 간단한 단축키 하나로 순식간에 되돌려 놓는다. 그것은 바로 Ctrl+z, ‘실행취소’ 버튼이다.
인간의 실수가 컴퓨터 작업에만 있겠는가? 우리의 삶은 실수투성이다. 아무리 완벽하려 노력해도 실수를 피해갈 수 없다. 또 그 실수란 것은 누군가 ‘저장’ 버튼을 꾸욱 눌러버린 듯 잔인하게도 우리 뇌리에 박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 잘했던 일, 기뻤던 일들도 많았을 텐데 머리 속엔 온통 ‘이불 킥’을 부르는 실수들로 가득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칭찬보다 ‘너는 그러지 말았어야 해’라는 핀잔과 후회가 앞선다. 아! 인생에도 ‘실행취소’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인생에서 혹은 기억에서 실행취소 작업은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하고 긴 시간이 소요된다. 심리학자 페인(Payne)은 2007년 그의 논문에서 기억차단이 어려운 이유를 “감정적인 사건은 우리 자신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많은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치 않는 기억을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사건에 대한 감정들이 사건을 떠올리게 해서 오히려 사건을 더욱 기억하기 쉽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의 흑역사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는 ‘사건의 정서적 분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잊고 싶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감정들과 마주해야만 한다. 사건을 떠올리는 것도 괴로운데 그 사건과 관련된 감정과 마주하라니 너무 잔인한 해결법이 아닌가?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해결되지 않은 부정적 감정이 남아있을 때 우리의 뇌는 그 감정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식하여 끊임없이 해결을 요구하며 그 기억을 의식으로 끌어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떠올리기도 싫은 실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기억과 감정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는 공감과 위로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과 관련된 장소나 단어는 촉발자극이 되어 저 멀리 사라지던 기억을 다시 끌어내기도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이다. 그 사건이 여전히 ‘나쁜 사건’으로 기억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쁜 사건’이란 정의는 대부분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수십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추하게 넘어졌던 사건이 나에겐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 생각되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전환해 본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 나에겐 절대 잊히지 않는 창피한 사건이지만 남들에겐 그냥 한번 웃고 지나갈 해프닝이기도 하다.
레바논 출신 미국 금융전문가인 지아드 압델누어는 ‘삶에는 실수가 없고 배움만 있다’고 했다.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이후의 실수를 줄이고 책임감을 배우며, 실수를 만회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위기대처능력을 배운다.
해석에 따라서 실수가 만들어 낸 이불 킥 사건은 단순히 ‘나쁜 사건’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사건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컴퓨터는 ‘실행취소’를 통해 단순히 사건을 되돌리지만, 우리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올 한해도 우리의 삶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실수와 이불 킥 사건들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2020년에는 우리의 실수에 괴로워하고 후회하기보다 이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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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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