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는 원래 ‘빠른 배’라는 뜻이다. 스페인어의 ‘feeleebote’에서 왔다. 이 배를 해적들이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해적선’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해적과 관련해 쓰이는 일은 거의 없고 정치판에서 원하지 않는 표결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주제와 관계없는 성경책이나 전화번호부를 읽으며 시간을 끌어 의사진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다수결 원칙에 의해 진행되는 의사일정을 가로챈다는 점에서 해적질과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 민주국가는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 수단이 처음 허용된 것으로 로마시대로 알려져 있다. 줄리어스 시저의 정적이었던 카토는 시저의 정치적 야망을 꺾기 위해 이를 잘 활용했다. 로마법은 해가 지면 더 이상 의정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 발언을 계속하면 원하지 않는 안건이 의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시저와 폼페이 간의 내전에서 폼페이 쪽에 섰다 참패하며 결국 아프리카 우티카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목숨 대신 자유를 택한 카토의 삶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 독립전쟁을 일으킨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존경한 인물의 하나가 바로 그였다.
미국도 연방상원은 상원 규칙으로 대부분의 경우 필리버스터를 허용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원의원 3/5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단 이 규칙은 상원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면 과반수로 바꿀 수 있다. 2013년에는 민주당이 연방대법관을 제외한 고위 공직자의 인준을 과반수로 할 수 있게 했고 2017년 공화당은 아예 연방대법관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하원도 필리버스터를 허용한다. 하원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은 현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가 갖고 있다. 펠로시는 미성년 때 부모 따라 밀입국한 아동 보호 행정명령과 관련 장장 8시간 8분간 연설했다.
크리스마스 날인 25일 한국 국회에서는 필리버스터 잔치가 벌어졌다. 자유 한국당은 범여권이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 상정을 막겠다며 일부 의원은 기저귀까지 차고 결사 항전을 벌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불리는 이 제도는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에 연동제를 실시하는 안으로 지역구에서 일정 의석 이상 가져오면 아무리 많은 표를 얻어도 비례대표 의석은 가져오지 못하게 돼 있다. 이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려면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국회의원 3/5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범여권은 위원회 3/5 이상 동의로도 할 수 있다는 편법을 써 패스트 트랙에 올렸다. 이는 선거에 관한 규정은 여야 합의로 바꾼다는 한국 정치판의 오랜 전통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필리버스터에도 새 선거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자유 한국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비례 한국당’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어차피 이 의석은 군소 정당에게만 돌아가니까 위성 정당을 하나 더 만들어 이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비례대표 의석의 절반을 자유 한국당이 가져가게 된다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꼼수라고 비난하면서도 자신들도 ‘비례 민주당’을 만드는 안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꼼수 선거법’에 ‘꼼수 비례당’ 등 한국의 연말 정국은 꼼수로 얼룩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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