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네티컷에서 펜실베니아로 팟캐스트를 들으며 혼자 6시간 동안 장거리 운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구름이 많고 따뜻한 날씨라고 했는데, 산길을 넘어가는 동안 꽤 굵은 눈발이 날렸다. 공사 중인 길이라 갓길도 전혀 없는 1차선 도로였고 중앙분리대도 낮은 길이었다.
작년에 피츠버그 공항에 가다가 눈보라를 만나서 차가 휙 돌았던 경험이 갑자기 겹쳐 보이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앞 유리에 날아드는 굵은 눈발들을 보고는 공포에 떨며 브레이크에서 완전히 발을 떼고 천천히 속도를 낮춰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앞차는 속력을 내서 달려가는데 나는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산길 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도로가 검은색인 부분보다 흰색인 부분이 더 많아졌고, 덩달아 내 심박수도 더 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일부러 혼잣말을 하면서 나를 진정시켜야 했다. “아직 많이 쌓이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풋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천천히 가면 괜찮아” 라고 소리 내 말하면서.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11월밖에 안되긴 했지만 겨울 타이어를 샀어야 하는 건데 왜 안 사서 이 사달을 만드나, 겨울에 장거리 운전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고 위험을 뒤집어쓰고 있나, 엔진브레이크 쓰는 법을 미리미리 연습해뒀어야 하는데 왜 그러질 못했나. 심장은 쿵쿵 뛰는데도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국지적인 눈이어서 산길을 벗어난 후에는 괜찮았고, 다시 속력을 내어 펜실베니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눈길을 갈 때는 그저 잡음에 지나지 않던 팟캐스트 소리도 다시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쿵 뛰던 심장이 진정되었을 때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말이 내 귀에 꽂혔다. 그 팟캐스트는 정신과 전문의가 나와서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는데, 우울증으로 찾아온 청년에게 보통 두 가지를 당부한다고 했다.
첫 번째로 집에 입원해 있다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현대사회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시간을 내어 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두 번째로 남 탓, 세상 탓, 안 되면 날씨 탓이라도 하라고 했다.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우울해진다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누군가가 뒤에서 칼을 들고 쫓아오는 것처럼 일에 쫓기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밀려오는 일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태엽 풀린 인형처럼 엎어지고는 했다. 그리고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전부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자신을 원망했고, 나는 이렇게나 모자란 사람이니 남들을 쫓아가려면 더 해야 한다고 채찍질하고는 했다. 사실은 내 탓이 아니었는데도.
어쩌면 그 날 산길 운전에 건강한 마음을 가꾸기 위한 원칙이 모두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몰아치는 곳을 만나면 가까운 출구를 찾아서 나가 좀 진정될 때까지 쉬어갈 수도 있었는데도, 6시간 내내 5분 동안 주유를 한 것 외에는 한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갔었다. 운전대를 한번 잡았을 때 끝을 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눈이 들이닥친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고 내 탓이 아니었는데도, 굳이 탓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꺼내서 내 탓을 했었다. 그러지 않았어도 괜찮았는데.
창 밖에 날리는 눈발마냥 마음에도 눈발이 날리기 쉬운 겨울이다. 쌓이는 눈을 삽으로 퍼내는 것처럼 마음에 묵은 나쁜 습관들도 퍼내는 겨울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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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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